올리버 예게스(2014). 강희진(역). (2014). 결정장애 세대. 미래의창



올리버 예게스(2014). 강희진(역). (2014). 결정장애 세대. 미래의창

젊은 독일 기자가 2010년대 현상을 잘 묘사한 글. 정치학부 출신 기자양성과정을 나온 그의 명쾌한 분석과 번역자의 위트가 돋보인 글
학사과정의 능력인지 기자양성과정인지 개인의 능력인지... 대단한 독일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래는 인용글들....

놀고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길어지면 그것도 지치기 마련이다. 초호화 요트를 타고, 최고급 호텔에 머무르고, 대마초를 피우고, 밑 빠진 독처럼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계속되면 그역시 따분해진다. 마리 바시키르체프가 말했던 그런 종류의 심심함 말이다(55). 

아무리 비틀고 뒤집어 말해도 결론을 하나다. 사람은 누구나 늘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들의 시선을 내게로 끌고 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늘 남들로부터 칭찬과 감탄, 주목을 받고 싶어 한다. 인스타그램instagram을 비롯한 각종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는 모두가 내 솜씨에 감탄하기를, 아낌없이 창송해주기를 바란다. 내 정치적 견해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정곡을 찌르는지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고, 이번에 내가 직장에서 맡게된 새로운 프로젝트에 모두들 박수갈채를 보내주기 바라고, 내 탁월한 패션 감각에 모두를 감탄사를 연발해주기를 원한다(62). 

주변을 돌아보면 심각한 '헤비유저heavy user'가 정말 많다. 개중에는 늘 고개를 떨군 채 금방이라도 스마트폰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사람도 있고, 멍하니 화면만 응시하고 있는 '얌전한' 유저도 있다. 주변 세상에 무관심한 채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전문용어도 생겨났다. '푸빙phubbng'이 그것이다. 푸빙은 전화기를 뜻하는 '폰phone'과 무엇인가를 무관심하게 냉대하는 것을 뜻하는 '스너빙snubbing'이 합성된 단어다. 그런 푸빙 현상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68). 

2000년대는 우리를 디지털 인류로 변화시켰다. 콘서트장에 가도 우리는 연주를 듣고 즐기기보다는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기에 바쁘다. 우리는 또 새로 산 바지가 내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온 세상에 보여주기 위에 거울 앞에 서서 기꺼이 '인증샷'을 찍는다. 삶의 무게에 지치고 힘들 때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휙휙 넘기며 추억에 잠긴다. 길을 잃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대신 스마트폰 지도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83) 우리는 누군가가 내게 미소 지으며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줄 기회를 미연에 방지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보다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를 더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500명의 '친구'가 있지만, 우리 마음 속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83-84). 

메이비 세대에게 호그와트는 동화 속 세계와 동의어다. 우리는 그 방을 최대한 푹신하고 안락하게 꾸며놓았따. 인생은 아름다워야 한다. 아름답고 화려하고 멋있어야 한다.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동화속  세계에서내적 균형점을 찾는다. 거기에 훼방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저 멀리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그 자리에 행복이라는 건물을 세웠다. 비록 지반이 불안정해서 흔들거리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건물은 행복의 건물이다. 그 건물에는 우리 모두가 믿고 따르는 규칙이 한 가지 있다. 좋은 것이 곧 올바른 것이라 규칙이다(119). 

우리는 또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들'로 하드디스크를 가득 채워놓고선 시간이 아무리 넘쳐도 절대 듣지 않는다(182). 

어느 똑똑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지닌 능력보다는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라고. 그 현자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였다. 조안 K.롤링이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한 말인데, 우리가 흔히 잊고 사는 진실인 것 같다. / 우리는 부드러운 몽상가들이다. 우리가 바라는 거라고는 오직 약간의 평화와 야간의 기쁨 그리고 완전채식주의자도 먹을 수 있도록 반죽에 달걀을 넣지 않고 구운 케이크뿐이다. 우리는 우리다. 그런데 우리가 사실 진정한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나'일 뿐. /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다. 그 어디에도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길 위에 서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먼 훗날 우리 삶을 되돌아보며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지 못했다. 갈림길에서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다. 그냥 직진하는 편이 더 좋았을 뻔했다"라고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안정을 바라는 동시에 늘 어딘가로 도망친다./ 그런 의미에서 'YOLO!'라 외치고 싶다.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You Only Live Once!"(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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