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아리에스. 1973. 문지영. (역). (2003). 아동의 탄생. 새물결 출판사.
나의 첫 번째 명제는 전통 사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고, 두 번째 명제는 산업 사회 내에서 아이와 가정이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략). (36)
현재의 여러 현상들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다룬 두 번째 명제는 인간과학이 청년기의 여러 위기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에 의해 많이 활용되었다. 그러한 위기들은 젊은이들이 성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겪게 되는 어려움과 반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의 분석 결과는 그러한 상황은 가정과 학교에 젊은이들이 너무 오래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나는 또 가족의식과 청년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이 동일한 현상이자 상대적으로 연대 추정이 가능한 최근의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가족은 이전의 보다 밀착되고 정감어린 사회 공간 내부에서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도 함께 보여주었다. (38)
-> 현재 내가 경험하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역사적으로 쭉 이어왔다고 생각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오늘날 인류학자들이 우리의 ‘야만인들’에게서 찾아낸 것과 너무나 똑같은 구조들을 우리의 전통 사회에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인할 수가 없다. (42)
17세기까지 삶은 공개적인 것이었다. (중략) 우리는 15세기 이래 18세기까지 이러한 가족의식이 탄생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18세기 전에는 왜 가족의식의 발달이 옛날의 사회성을 붕괴시키지 못했는가도 살펴보았다. 가족의식의 발달은 도시 및 농촌의 명사들, 귀족들 혹은 부르주아들, 장인들 혹은 상인들의 가족과 같이 부유한 신분에 한정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8세기부터 가족의식은 모든 신분에게로 한정되었고, 사람들의 의식 가운데 전체적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이러한 변화는 흔히 가족을 포함한 사회적 속박에 대한 개인주의의 승리로 야기되어왔다. (중략) 가족은 18세기 말 마르탕주 장군의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이 머물기 좋아하고 언급하기 좋아하는 폐쇄적 사회가 되었다. 오늘날의 모든 습속의 변화는 가족의식의 급속한 성장을 무시하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승리한 것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이다. (640-641).
옛날의 단일화된 사회 집단이 다양한 연령층과 신분을 포함했던 반면, 이제 가족과 계급들이 정신적으로 유사하고 생활양식상의 동일성을 공유하고 있는 개인들을 하나로 결합시켰다. 이러한 신분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구분되었으며 공간적으로 하나로 묶어놓기 위해 엄격히 서열화되었기 때문이다. (649-650)
-->부르주아로 인해서 아동이 탄생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 10세기~19세기의 한국에서 아동의 위치는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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