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미(2001[2005]).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책세상



이나미(2001[2005]).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책세상
2009.11.04
들어가며
이 책은 보수적 자유주의의 본질과 그 함의를 소개한다. 특히 <독립신문>을 중심으로, 한국 자유주의의 초기 형태와 담론들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자유주의와 그 문제를 검토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동기를 ‘한국 자유주의 및 자유주의 일반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실제로 많은 권력자와 정부가 공익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개인 역시 자신을 위한 가치로 ‘자유’를 오해하고 있다. 이 책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동기에서 출발하였고,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역사 속에 존재하는 자유주의가 무엇인지를 소개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보수주의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고자 자유를 외치고 있다. 그들이 법과 제도를 통해 견제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에는 왕권이었고 오늘날에는 민주주의이다. 왜냐하면 민중은 법치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자유주의 기원에 대한 논의를 <독립신문>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그 전의 사상인 유교는 자유주의적 성격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독립신문>은 개인의 생명권, 재산권, 자유권과 경제적 독립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고 경쟁심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상은 사회진화론과 인종주의로 경도되었으며, 제국주의를 미화하게 되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우리의 자유주의의 특징 뿐 아닌 자유주의 일반이 갖는 본질적 모습이다.
1장.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일반의 본질적 모습은 무엇인가?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이것을 살피기 전에 오늘날 자유주의 성공의 원인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자유주의가 비교적 포용적 나누기를 잘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정의들을 살펴보면 모든 좋은 것, 모든 호의적인 개념들은 다 포괄한다. 남은 것은 악의와 관련된 개념이고, 이것은 공산주의의 몫이 되었다. 심지어 사회주의 중에서도 호의적인 부분은 자유주의의 몫이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들이 선언하는, 예를 들어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자유롭다’는 가정들은 폭력이다. 진리이기보다 단순히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또한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창의력은 각각 권력과 돈의 용어가 되어 버렸다.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여유 있는’자들의 이데올로기이다. 그들은 정치는 관심 없다. 정치적 자유는 민주주의 내용이다. 그들은 그들의 재산권이 위협받을 때만 정치적 자유를 부르짖는다. 자유주의 등장 계기는 유산자 계급이 자신의 재산권을 법적, 정치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생활만 침해하지 않는다면 독재 정권이든 왕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사라지고 이제 민주주의를 얘기할 이유가 없어진 이 때, 자유주의가 민주주의라는 구호를 대신하고 있다. 통일 후 체제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의 경우 자유주의에 관한 성찰과 비판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유주의 이념은 서구에서 온 것이지만 서구 자유주의 보다 자유주의 본질을 오히려 잘 보여준다. 우리의 자유주의를 봄으로써 서구 자유주의 또는 자유주의 일반을 더 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는 ‘무슨’자유를 주장하는가? ‘개인’의 자유이다. 개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자만이 개인이 될 수 있다. 자유주의적 자유는 ‘강한 개인의 자유’이다. 자유롭고 강한 개인의 자유는 곧 독립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에서는 각 개인들이 합리적 판단자라고 생각한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각각의 개인들이며 이 개인들은 누구나 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고자 한다. 이러한 자유주의의 명제는 인간이 옳은 것이 중요해서 고통을 쫓을 때를 설명할 수 없어서 사실이 아니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만 유리한 가정이라는 문제가 있다. 오늘날에는 따를 규범이 없고, 이기주의가 미화된다. 이기적이고 권력을 쥐고 있고 부자라면 오늘날 최고의 자랑이다. 이런 강요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부와 권력 외에는 어떤 것도 자부심을 느낄 수 없게 한다.
2장.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더불어 미군정에 의해 홍보되고 교육된 이념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앞서 일제시대 이전인 1890년대 말부터 개화파에 의해 자유주의적 주장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이념이 본격적으로 수용되어 대중에게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서재필, 윤치호의 <독립신문>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갑신정변 이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서구 사상을 접했고 귀국 후 <독립신문>을 통해 그것을 전파했다. <독립신문>은 유교를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소수를 위한 ‘이론’이 아닌 ‘이념’으로 대중을 상대로 한 최초의 민간 신문, 최초의 순 한글 신문이었다. 이러한 <독립신문>은 그 당시 대중과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체제 이념에 영향을 끼쳤다.
<독립신문>을 단순히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파악하려는 견해는 <독립신문>의 전체적인 논조를 도외시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독립신문>의 사상을 자유주의로 규정하고 내용을 분석할 경우, 이곳에 나타나는 상호 모순되는 내용들, 즉 민족과 백성을 위하는 내용과 외세 의존적이고 민중 불신적인 내용의 공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모순이 자유주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독립신문>에서 가장 강조하는 사상은 자주독립과 문명개화 사상으로, 내용을 보면 이익을 추구하고 재산권을 갖는 개인의 자유, 경제적 활동의 중요성 등 근대 자유주의의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독립신문>은 우리 사회에 ‘민족주의’ 또는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를 대중에게 최초로 소개, 전파했다고 볼 수 있다.
3장. 한국 자유주의의 내용
개화파들이 자유 사상(liberty)을 받아들일 때 그들은 유교적 ‘의(義)’를 포기하지 못했다. 이것은 유학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자유를 수용할 때의 필연적 과정일 것이다. 사실상 자유주의의 핵심은 이익과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하는 주의인데 유학자들은 모두 이것을 부정했다. ‘의’는 유교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였다. 이 시기에 이익 개념이 넓은 의미의 쾌락으로 승화되었다. 또한 그동안 천시되어 왔던 상업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졌다. 이것은 정경 분리의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이들은 국가 간 정치 관계보다도 경제 관계를 중시하여, 그 당시 조선과 일본의 냉랭한 정치적 관계에 개의치 않고 경제적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아 교역한다고 하였다.
권리(right)라는 개념도 유교적 전통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을 것이다. 각 개인이 어떤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유교 문화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때문에 ‘통의’라는 군주와 백성이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 말을 대신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생명, 자유, 재산의 권리를 <독립신문>에 기록하였다. 이것은 생명 위협과 재산권 위협에 대한 반증이었다.
독립(independence)의 개념 역시 ‘자유’와 ‘권리’가 그랬던 것처럼 쉽게 이해되는 개념은 아니었다. 흔히 생각하는 민족주의적 개념으로서 독립의 개념은 <독립신문>에서 독립의 개념이 개인이 자립하고 경제생활을 해서 자기 밥벌이를 자기가 한다는 개인적 차원의 개념으로 더 빈번하게 쓰이고 있음을 볼 때, 지나치게 협의적인 이해이다. <독립신문>은 ‘독립’을 “남에게 의지 아니 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게 속방의 지위를 지운 것은 청국밖에 없었으므로 그 당시 ‘독립’의 구체적 의미는 ‘청국으로부터의 독립’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독립신문>에서 ‘독립’은 국가 차원의 독립보다는 선술한 사람 차원의 문제로 더 빈번히,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에 가장 저해가 되고 있는 유교적 사고를 물리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독립신문>은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의존’이 아닌 ‘독립’의 미덕을 강조하면서, 국민들 마음의 일대 혁신과 개조를 시도하고 있다. <독립신문>에 의하면 정말 나라에 필요한 사람은 유교에서 말하는 벼슬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재물 생길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양반은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로, 양반들은 근면성과 경쟁심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양반’은 종종 <독립신문>에서 ‘자주독립한 사람’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였다. 또한, 양반이 일하는 사람들, 또는 재물을 모으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신분 질서를 새로운 질서로 재편함으로써 자신들이 권력으로 편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유주의적 내용들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을까?
4장. 자유주의가 친제국주의가 된 까닭
19세기 말 개화파의 대부분은 친일 인사로 돌아섰다. 그들의 자유주의 사상과 친일행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박영효는 일본의 내정간섭, 조선의 보호국화를 외쳤고, 윤치호는 조선의 앞날을 위해서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것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유주의는 그 논리적 특성상 통치 주체가 누구이든 국적이 무엇이든 간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것이 자본의 운동이나 개인의 자유에 걸림돌이 될 경우 반대하여 저항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특징이요, 이념이다. 또한 자유주의는 무한경쟁, 적자생존의 원리 등으로 제국주의와 친화력을 갖는다. 즉 자유주의자들이 친일로 가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서구 자유주의 역시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인간 이성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를 정당화했으며, 때문에 자유주의와 제국주의는 양립한 것이다.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자유주의의 요소 중 하나는 주어진 규범을 부정하고 개인의 쾌락과 이익만을 인정하는 점이다. 홉스의 자연권 사상에 의하면 인간은 오로지 자기보존 본능만을 갖는 존재고, 국가나 사회는 그러한 본능을 추구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라 하였다. 자유주의 2세대라 할 수 있는 벤담은 인간은 오로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존재다. 신자유주의자인 노직 역시 존재하지도 않는 사회의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개화파 역시 기존 규범이라 할 수 있는 유교를 부정하고 이익 추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들에게는 조국도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주의에서 기존 규범의 부정과 더불어 이익 추구의 자유가 주장된다면 이러한 논리의 자연스러운 귀결은 경쟁적 질서이며,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의 전제이기도 하다. 또한 경쟁의 강조는 식민주의적 사고, 제국주의적 사고로도 통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경쟁의 강조가 식민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경쟁적 질서에서 패배자는 진 것이므로 그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짓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쟁 논리를 강조하게 되면 생존 경쟁에서의 패배는 능력 없음으로 받아들여지며 적자생존의 논리 등 사회진화론 인종주의, 제국주의 사상으로 발전한다.
사회진화론은 자유주의의 자연스러운 논리적 귀결이었다. 한국에는 사회진화론이 1880년대 말 수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진화론을 습득한 이는 유길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역사와 문화의 발전이 미개화, 반개화, 개화의 세 단계가 있다고 전제하고 조선은 반개화 단계라고 하였다. 이러한 등급 나누기는 진화, 진보 개념에 필수적 요소이자, 근대 권력의 효율적인 통제수단이다. 자유주의, 사회 진화론은 각각 개인적, 민족적 수준에서 등급 매기기를 통해 부단히 진보하도록 강요하며 이 같은 경쟁에서 패배할 경우 지배를 받는 것을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게 한다. 개화파의 ‘개화’라는 의미 자체도 어찌 보면 이 당시 사회진화론의 ‘진화’와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개화는 진화라는 의미 외에, 문명화, 서구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당시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문명화된 사회로 그리고 있으며 그러한 사회가 바로 서구사회로 묘사되고 있다. 개화파는 지나칠 정도로 서구화를 지향했다.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한 서양화에 있었다.
개화파의 궁극적 목표가 서양화였다고 할 때 이들이 서양의 정신인 기독교를 받아들여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일등 국가’들이 모두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이었다. 개화파는 기독교를 자발적으로 수용했고 그것의 홍보와 전파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개화파가 기독교 수용과 관련하여 가진 문제 중 하나는 그들이 사회진화론적 기독교관을 그대로 수용한 점이다. 앵글로색슨족은 생물학적으로 우월하고 신이 선택했으며, 신의 도구이고, 모든 인종의 궁극적인 개선이 신의 섭리의 목표라는 것이다.
사회진화론의 가장 주요한 내용 중 하나가 인종주의이다. 당시 개화파들 역시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인종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이들은 강국인 서구 국가들을 가장 문명화된 국가라고 보았기 때문에 여러 인종 중 유럽 인종 즉 백인종을 미화하고 다른 인종을 야만으로 취급하며 그들의 식민 상태를 당연시하였다. 이 같은 인종주의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독립신문>에서 우수한 조선인종이 더욱 정진하여 청국과 일본을 쳐서 그 땅을 차지하자고 말하였다. 또한 이러한 제국주의적 인종주의는 일본의 ‘아시아연대론’으로 발전하여 그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역할을 했다.
5장. 자유주의가 반민중적인 까닭
개화파들은 민중을 불신했다. 그들은 민중을 그들이 바라는 문명사회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세력으로 보았다. 개화파가 시종일관 비판하고 있는 양반 계급과 유학은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민(民)’이었다. 양반 세력의 유학을 그토록 비판한 이유도 이들이 민의를 이끌고 대표했기 때문이었다. 민중은 개화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실제로 민중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딜레마는 자유주의 사상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당연하게 쓰고 있지만,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상충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는 독재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왜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주의 개념을 필요로 한 것일까? 그것은 다수의 협력과 지지가 필요한 사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자 지배라고 하는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는 변화시켜야만 했다. 또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사회내 다수가 실질적 지배 계급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 방법으로 대의제와 관료제가 거론된 것이다. 오늘날 대의제의 출발은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 아닌 민의를 여과 내지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의 연방제도 빈민의 영향력이 다른 주로 퍼지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개화파들도 서구 자유주의 전통과 마찬가지로 민권의 신장이 아닌 민권의 제한에 노력을 기울였다.
민은 불완전한 존재로 늘 통치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민이 저항권을 갖는다는지 또는 변혁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민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은 떠나는 것이다. <독립신문>도 마찬가지로 의병활동과 같은 민의 저항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독립협회는 자신들의 활동과 권력을 위해서는 월권과 불법을 불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동학과 의병활동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첫째는, 그것이 명분이 없고 불법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이들이 개화파와 서양, 일본에 반대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독립신문>은 외국군사가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면서 “만일 외국 군사가 없었다면 동학과 의병이 그동안 경성에 범하였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였다. 전후기를 막론하고 개화파는 우민관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에서와 같은 ‘민변’ 즉 민중들의 혁명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렇듯 민의 생각과 의지를 무시하고 불신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민의를 얻는 데도 실패했다.
개화파는 유교의 전통적인 민 개념을 공유하면서 민을 철저히 불신했다. 그들이 민권을 주장한 이유는 자신들의 개인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자유주의사상은 우민관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맺는말
본서에서 개화파의 자유롭고 싶은 ‘소박한’ 신념이 친제국주의로 발전했고, 반민중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귀결은 자유주의 본질 자체에서 도출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초기 한국 자유주의의 또 다른 유산은 권위주의이다.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정권은 초기 자유주의의 반민중적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이들은 또한 민주주의를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전파하여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개인적 권리, 의무 개념을 강조하였다. 차이가 있다면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을 우선시하며, 박정희의 자유민주주의는 ‘의무와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유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자유인은 권력의 탄압에도 돈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그것을 방치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유를 적극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유주의가 아닌 대안이 우리에 필요하다.
의미 있는 부분
. 자유주의가 나누기를 잘해서 성공했다는 부분에서 자유주의를 보는 새로운 해석이 틀이 생겼다.
. 젊은이들이 자유, 창의성이라는 단어보다 ‘엽기’를 사용한 이유를 기성의 말이 싫고, 대신한 말이 없어서이고, 왜냐면 자유와 창의성은 권력과 돈의 용어이기 때문이라는 부분이 인상 깊고, 공감한다.
. 유교적 ‘의(義)’와 롤스의 ‘정의론’과 맥킨타이어의 ‘공동체 주의’의 관계이다. 현대 윤리학의 양대 산맥은 롤스의 ‘정의론’을 위시로 하는 개인주의와 맥킨타이어의 공동체 주의이다. 동양의 유교적 ‘의(義)’는 이 둘 중 어디에 자리매김할까? 아니면 삼각형 구도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들 사이에서 위치되어질까?
. 이 책을 접하기 전엔 <독립신문>의 ‘독립’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의미하는 민족주의적인 용어인 줄만 알았다. 역시 책은 지식의 지평을 열어주고, 무지의 편견에서 나를 해방시켜주는 것 같다.
. 등급 나누기에 관련된 부분. 등급나누기는 진화, 진보 개념에 필수적 요소이자, 근대 권력의 효율적인 통제수단이다고 하였다. 현대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등급이 나누어졌는가? 또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통제 수단이 되어 얼마나 우리들을 통제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개화파의 근원적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왜 조선의 독립을 외쳤는가? 개인적 양명을 위해서인가? 진정 나라를 사랑해서인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외국 유학까지 마치고 정부 요직에 있는 인물들과 친교를 맺고 있는, 당대 최고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개화파들. 본서에 나온 개화파들은 한결같이 나라보다는 개인의 욕심을 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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