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Against Interpretation. 이민아(역). (2002). 해석에 반대한다. 도서출판 이후
해석에 반대한다(1964).
"에술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을 예술 자체로 경험해야 한다(투명성)". 그러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탐미주의와는 다른, 투명성이란 예술, 그리고 예술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우리의 실제 경험을 우리가 훨씬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으로서,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가 파괴해버린 우리의 인간적 감수성을 회복케 해주는 것 (책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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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하는 예술의 모방 이론은 예술이 언제나 구상적이라는 가정과 함께 간다. 그렇다고 해서, 모방이론의 옹호자들이 장식적이고 추상적인 예술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예술은 반드시 '사실주의적'이라는 그릇된 믿음은) 모방 이론의 테두리에 놓인 문제들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다.
문제는, 예술에 관한 서구의 모든 의식과 반성이 예술을 모방이나 재현으로 봤던 그리스 예술 이론의 테두리 안에 그대로 있다는 점이다. 이 이론 때문에 예술 자체가 (주어진 예술작품 자체 이외에도) 문제시되고 변호되어야만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또한 '형식' 이라는 것이 '내용'이라는 것과 분리되어 있다는 묘한 환상과, 내용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고 형식을 장식품으로 만들고 마는 선의의 조처 역시 예술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가와 비평가가 예술은 외부의 현실 세계를 묘사한 것이라는 이론을 버리고 예술이 주관을 표현한 것이라는 이론을 택한 현대에조차, 모방 이론의 주요 특징은 존속하고 있다. 예술작품을 그림 모델(현실을 그린 것으로)로 이해하든지 아니면 진술 모델(예술가가 진술한 것으로)로 이해하든지 간에, 여전히 내용이 우선이다. 내용은 시대를 타면서 바뀌어 왔을 것이다. 오늘날의 내용은 덜 구상적이고, 덜 분명하게 사실주의적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그 작품의 내용 자체라는 주장이 여전히 당연시되고 있다. 아니면, 오늘날 흔히 말하듯이, 예술작품은 무엇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X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X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X에서 말한 것은....." 등등). (20-21)
예술 작품은 본원적으로 그 내용이라는 주장(22).....
"사실은 없다, 해석이 있을 뿐이다"라고 니체가 (적절히) 말한 바 있는, 광의의 해석(22)
해석은 텍스트에 담긴 명백한 의미와 독자의 요구가 어긋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 해석자는 직접 손을 대서 지우거나 고쳐 쓰지 않으면서, 텍스트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23).
도시의 공기를 더럽히는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처럼, 예술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뱉어놓은 말들은 우리의 감성에 해독을 끼친다. 정력과 감성을 희생하면서 비해할 대로 비대해진 지식인의 존재가 이미 해묵은 딜레마가 되어버린 문화권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25).
아니, 그 이상이다. 해석은 지식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다(25).
투명성은 오늘날의 예술-그리고 비평-에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의미심장한 가치다. 투명성이란 사물의 반짝임을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33).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34).
-> how to??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 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내용을 쳐내서 조금이라도 실체를 보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 한다면 우리는 예술작품(그리고 거기에서 유추한 우리의 경험)이 우리에게 훨씬 더 실감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34-35).
==>전혀 모르는 것A이 있을 때, 해석이 있으면 편하다. 그러나 해석이 변형된 전혀모르는 것A'일 때, 해석이 없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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