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진_교육을말하다_2005_(역)2008_궁리출판


하워드진_교육을말하다_2005_(역)2008_궁리출판

크게 의미 있는 부분들: 한국은 계급사회, 두 종류의 앎, 연계성, 콜럼버스story

지금까지 기술한 명백한 모순은 언론, 교육, 경제 분야의 상호 협력 속에 재생산되어 지배 이데올로기로 구실하는 복잡다단한 거짓의 그물망을 드러낸다. 집단 경험을 통해 문화를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담당하는 그 막중한 임무가 어떻게 수행되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문화를 재생산하기 위한 집단 경험은 억압받는 집단의 이해보다는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엘리트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그것이 문화를 재생산하는 정책의 목표이다. (28)

세상에는 단순하고 절대적이며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타당한 답은 없다. (31)

톰 팩스톤(Tom Paxton)의 노래 <오늘은 학교에서 무얼 배웠니? What did you learn in school Today? > 의 가사들은 학교가 거짓으로 가득 찬 교육을 통해 어떻게 역사를 왜곡하는지를 묘사한다 (33)

이 책은 역사 교육이 지금까지 저질러왔던 왜곡을 폭로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자들에게 비판적인 접근법을 교육에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34)

하워드 진이 제시한 교수법에 따라 다양한 관점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기록과 맥락을 나란히 놓고 비교한다면, 좁게는 학생들이, 더 넓게는 일반 대중이 현실을 좀더 비판적이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들을 연관지어 볼 것이다. (38)

학교가 학생들에게 이상을 가르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 현실을 들여다보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어떤 모순이 존재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현실의 정확한 모습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46).

[우리 교육체계가 안고 있는 커다란 결함] 학교는 학생들에게 돈이 어떻게 사회의 모든 면을 지배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돈은 당연히 경제체제뿐 아니라 정치체제와 문화, 심지어는 교육제도까지도 지배합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부와 기업 권력이 이 사회를 지배하는지 전혀 가르치지 않습니다. (47)

어떤 것을 아는 방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피상적인 앎과 마음 깊이 진정으로 느끼는 본질적인 앎이 그것입니다. (47)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현실 인식과, ‘마음 깊이 진정으로 느낀 본질적인’ 지식간의 괴리를 좁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자의 의무일 것입니다. (49)

-> 이렇게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교육적 지식’과 ‘진정한 교육적 지식’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교사교육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뤄지는 현장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 하지만 대체로 주류 교육체계에서는 학생들에게 계급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현실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이 사회가 훌륭한 사회라고 생각하며 성장하고, 열심히 일하고 교육을 받으면 부와 성공을 거머쥘 수 있고, 또 언젠가는 학교에서 배운 이상을 이룰 수 있다는 호레이셔 앨저의 신화가 여전히 활개치고 있습니다. (53)

-> 여러 상류사회 클럽이 존재하는 미국은 다소 계급적 요소가 있는 사회로 알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논리로 한다면 한국도 계급사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강한 어조로 말하자면, 한국도 계급사회다.
언제나 제도권 교육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 미국의 계급제도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배해왔습니다. ... 중산층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제도권 교육 내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정과 안전에 대해 매우 걱정스러워합니다. 그들은 자기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에게 종속되어 있지요. 그들은 위계질서 최상위 구성원들이 아니기에 자신의 지위와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불안해 합니다. (65)

문제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연계적 사고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 만약 다른 한편에서 특정한 현실과 그 존재 이유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해 연계성(링키지 linkage. 1969년 미국의 정치학자 J. 로즈노우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연계를 분석하기 위해 제창한 개념. 정치와 경제의 연계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를 설정할 수 있는 비판적 도구들을 학교가 학생들에게 마련해 주었더라면, 고통받는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해 미국 국민이 느끼는 만족감과 무관심의 정도가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70-71)
-> 연계성. 모든 것은 서로 연계, 링크되어 있다.

프레이리 선생께 다음과 같이 질문했습니다. ... 소수 인종 학생들에 대한 교육 실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프레이리 선생은 .. 선생께서 실패라고 부르는 그것이 바로 이 체제가 본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입니다. (85)

결국 누가 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 재단 이사들이나 이사회 평의원들이겠죠. 이사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사업가들이며, 평의원 역시 모두 사업가들입니다. 그들은 최상류층 사람들이며, 종종 교육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91)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지성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교사들은 조금 덜 비인간적이고 조금 더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일에 용기 있게 나서야만 합니다. 사실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윤리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93)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사회에 진보적 전망을 견지하고 심지어는 그러한 전망을 강의를 통해 소개하는 지성인들이 사회 투쟁이 벌어지는 외부 현실과는 단절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 교실 진보주의... (94)

교수님의 실천은 그들에게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자신의 연구가 부당한 현실의 변화를 집단적으로 지향하는 정치 프로젝트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늘 자유주의의 담론 속에서 지배적 가치들을 검증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가치들을 재생산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같은 논의는 실천이 결여된 탐구로 끝이 나곤 하지요. (96)
에스키모에게 눈을 지칭하는 단어가 여럿 있듯이 정치인에게는 거짓말을 가리키는 여러 가지 용어가 있습니다. (103)

제가 역사 공부를 막 시작했을 때, 흔히 ‘객관적 역사가’라 불리는 역사가는 될 수 없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믿지 않았지요.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역사와 그 밖의 다른 분야 교직 내 존재하는 객관성에 관한 엄청난 위선을 저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며, 과거를 그대로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선택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이루어지며, 모든 역사가와 역사 연구는 어떤 관점이 있습니다. 단순한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죠. (105)

우리는 상대편 사상자가 몇 명이 발생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절대 물어보는 일이 없죠. 걸프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무렵, 콜린 파월이 기자들에게 미국인 사상자는 거의 없다고 발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이라크인 사상자는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콜린 파월은 ‘그건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 태도는 미국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되풀이 되었습니다. (111)
-> 미국산 허리우드 영화에도 이와 같은 일이 얼마나 발생해는가? 관객은 우리 편, 우리 영웅에게만 집중한 채 상대편의 죽음(들)에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저는 아주 열심히 노력한 이 땅의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주 부유한 사람들에 대해 생객해보았는데, 제 눈에는 그들이 아주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와 그에 따른 보상은 물론,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와 그에 따른 보상 사이에도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113)

역사는 여러분에게 현상의 이면을 살펴보라 하고 “누구를 위한 번영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아가 계급적인 관점에서 전체를 바라보고, 누가 이득을 보며 누가 손해를 보는지 꿰뚫어보게 해줍니다. (120)

물론 민주주의를 칠판에 적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공식도 아니고, 정치체제도 아니고, 법률도 아니고, 체제도 구조도 아닙니다. 민주주의란 사람들이 정의로운 행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121)

오늘날 우리는 모든 관심이 정부에 집중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대통령이 무엇을 하는지, 의회가 무엇을 하는지, 법원을 무엇을 하는지 말입니다. 언론에서도 되풀이되는 이런 식의 관심 집중은 껍데기만 존재하는 의식, 역사를 만드는 일은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의식, 역사는 워싱턴에 있는 그 사람들 소관이라는 의식을 미국인에게 심어줍니다. 그러한 의식은 주의를 분산시켜버리는 방편입니다. 그네들은 전국 마을과 도시에서 국민이 벌이는 일은 무시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많은 일을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저항하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며, 또 세상을 바꾸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122-123)

하지만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민주주의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며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우리의 손과 행동에 달렸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역사의 어떤 시점이 되면 사람들이 실천하는 사소한 일들이 퍼져나가고 서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제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입니다. (124)

정치에 대한 의견 표명은 늘 있어왔다. 교과서가 그 부피와 지루함으로 제아무리 중립을 가장한다 해도, 교사가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입장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육은 사건과 책과 주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
따라서 고등교육에서 말하는 표현의 자유란 다양한 관점들, 다양한 정치 편향들이 학생들에게 소개되는 기회를 의미한다. 그러려면 독서와 사상과 관점에 관한 진정한 다원주의가-사상과 문화의 진정한 자유시장이- 필요하다. (130-131)

-> 교육은‘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다!?
체제는 문화 기제인 극장, 예술, 대중매체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허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의 크기는 돈과 권력으로 통제되며, 어떤 공연을 하고 상여 할지는 수지타산에 따라 제한된다. (133)

내 수업 시간 중 나는 표현의 자유를 누렸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올더스 헉슬리(영국의 소설가, 비평가- 옮긴이)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따랐기 때문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137)

정복당한 사람들은 열등하다는 생각.. 비인간화.. 노예화와 인종분리 정책..
(157-162)

-> 정복자들은 피정복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아서 극악을 일삼았던 것이다. 그들도 인.간.이었는데...
지속적으로 주장을 펼치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또 참여하도록 한 요인은 바로 그것이 삶을 더 흥미롭고, 즐겁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되새겨봅니다. 그 소설에서 이반 일리치라는 출세한 인물이 임종을 맞아 이렇게 자문합니다. ‘과연 나는 올바로 살아왔는가? 나는 부와 성공을 이루고 사회로부터 존경도 받았다. 그런데 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그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고 믿습니다. 바로 그것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입니다. (191)
-> 임종 시 만족하려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지금 죽는다면 만족할 것인가? 지금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 일적 요소(공부)에 치우치고 가정적 요소와 삶의 누림적 요소를 잠시 유보시킨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 단 한 번의 경험을 너무 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지만 중요한 어떤 사건을 통해 우리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이성이 다른 종류의 사고 방식을 수용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그저 생각해보는 데 그치고 말았는지 아니면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에 따라 두려울 수도 있고 또 유쾌할 수도 있다. (208).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계급 간 대립은 그저 떠도는 말이 아니라 삶의 현실에서 존재해왔다. 아마도 그런 말들은 현실의 불평등이 없어지는 그날 사라질 것이다. (219)

사람들은 자라난 환경이 어떠했던지 간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열린 사고를 가졌으며, 과거를 바탕으로 그들의 행동을 자신있게 예단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태도에 영향받기 쉬운 약점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약점이 바람직한 것과 또 그렇지 않은 온갖 가능성을 낳기도 하지만, 그러한 약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 같은 약점은 어떤 인간도 포기해서는 안되고, 어떤 생각의 변화도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될 수 없음을 뜻한다. (220)

미국 역사를 보면 어떤 사건이라도 내용을 보강하여 오늘날에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연대기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유사점을 찾아내는 것이죠. (271)

과거에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과 논쟁에 관한 전문가들은 있지만, 옳고 그름과 정의의 문제에 관한 전문가란 없으며, 학생들 의견도 교사 의견만큼이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73)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는다면 세상은 정체된다는 걸 학생들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런 세상을 누가 원하겠습니까? (274)

사람들이 ... 실상과 평등을 위한 투쟁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평등의 문제에 관한 감정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노예선에 짐짝처럼 실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족과 생이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껴보려고 해야 합니다. (275)

어떤 일을 이해하려는 것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르다(279).

사실을 둘러싼 분위기와 감정을 함께 강조하는 방식으로 흑인과 인디언 그리고 여성의 역사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81)

-> 가르칠 때, 분위기와 감정이 중요하다!
교사들은 어떤 교수법을 사용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로 하여금 독자적으로 읽고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선택하고, 관심있는 인물을 고르라”고 말해야 합니다. 교사의 임무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연구 계획을 세우는 데에 흥분할 것이고, 특히 경험에 비춰볼 때 여러 복잡한 가능성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82)

-> 가르침에 학생의 자율적 선택과 자율적 운영을 넣는 방법! 가르침의 자율성!
교사들의 소심함... 교사들은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위험을 최소화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수업 내용을 제시하고 그것이 주관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 ... 포용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포용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런 생각을 반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학생들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형편없는 점수 주지 않는다는 평판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283)

-> 이젠 알았으나, 나의 소심함이 문제다. 나 역시 소심하다. 비단 나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교사들이 다른 관점을 찾기 시작하고 첫발을 내딛으면 머지 않아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지는 않은가요?
그렇습니다. 저기 도서관에 모두 있으니까요.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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