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_2007_한국인의 문화적 문법_생각의 나무



정수복_2007_한국인의 문화적 문법_생각의 나무
서문
이 책은 내가 듣고 자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규칙들이 어디서 왔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노력의 결과물이다. (...) 이 책은 나와 나의 세대의 체험을 넘어 일제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을 몸소 체험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삶의 조건과 방식을 이해하고 싶다는 소망의 산물이며 1980년대에 태어나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자유를 구가하는 나의 아들과 딸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이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 낀 세대의 역할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문화를 전수받고 교육을 받으며 스스로를 형성한다. (4) (...)
(...)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을 파리를 떠나 암스테르담에서 썼고, 마르크는 <자본론>을 베를린을 떠나 런던에서 썼다. 물론 그들의 작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을 서울을 떠나 파리에서 썼다. (5) (...)
(...)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공간과 시간의 이동이 촉진시킨 성찰적 거리를 통해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정신적 문제의 뿌리를 찾아내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문제를 심층적이고 총체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장기적이고 성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 (6)
오래전부터 나는 순응과 적응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의 관습, 관행, 습관, 가치관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고 싶었다. (...)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구성하는 열두 가지 요소들이다. 이 책은 부정적 효과를 자아내는 문화적 문법의 구성요소들을 해석학적 방식으로 이해하고 계보학적으로 추적하여 그것들이 한국사회에 당연한 것으로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7)
-> 한국인의 공동체주의적 가치의 고착화를 말한다.
나는 한국인의 오래된 문화적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뇌관이 ‘개인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소속과 기원으로도 환원되지 않은 독자성과 존엄성을 지니는 개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개인존중사상이 없는 한 나이와 성별, 출신가문과 출신지역, 출신 학교와 출신계급을 기준으로 하는 서열의식과 권위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개성을 말살하고 개인차를 묵살하는 획일주의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한국인의 부정적 문화를 극복하는 길을 ‘개인주의’에서 찾는다.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개인주의를 살리는 길은 자율성을 스스로 신장케 해주는 길이며, 자율적인 교육이다.
문제제기에서 대안제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곳곳에는 나의 실천적 관심이 스며들어 있다. 학문적 작업은 문제제기와 해석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문제를 학문적으로 제기하고 분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적 방안을 모색해왔다. 지식인에게는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세상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실천적 작업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 자율성이 실제적 측면에서 발휘되도록, 실제 도움이 되도록 연구해야 한다.
이 책은 세 가지 점에서 ‘벽허물기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학문분과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했다. ... 많은 사람들이 종합 학문적 접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이 책이 학제간 연구의 구체적인 보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둘째로, 이 책은 학계의 연구성과를 충분히 참조하면서도 좁은 의미의 학계와 넓은 의미의 지식인사회 사이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학술과 비학술의 경계를 완고하게 지키면서 아카데미즘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를 더 잘 드러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방안을 찾는 데 있다. 셋째로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적 진영의 벽을 허물고 있다. ... 이 책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심층적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10-11)
-> 우리가 하고 있는 연구가 아카데미즘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성즉명 불성무물(誠卽明, 不誠無物)이라는 <중용>의 말이 있듯이 성의 있는 마음으로 텍스트를 읽으면 뜻이 밝게 다가오고 성의 없이 책장을 넘기면 아무런 의미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12)
(...) 누군가가 책을 쓰는 일은 아직 알지 못하는 친구에게 긴 편지를 쓰는 일이라고 했다. (...) 자기 바깥의 세상에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쩌면 피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라도 주체적으로 살고 의미있게 살려면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12)
-> ‘나’를 잃게 하는 세상.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교육에서 ‘나’를 알게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세상의 게임이나 뉴스 스포츠에 빠지게 되면 ‘나’를 잃게 된다. 교육 역시 ‘나’와 유리된 지식을 중요시하게 되면 ‘나’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 자유지상주의에서 말하는 자기 소유의 개념처럼 ‘나’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자율성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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