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2010). 아프니까 청춘이다. 쌤앤파커스
"좋은 선생이란 학생들을 꿈꾸게 만들고,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 믿는다.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
이 문제의식이 결국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 (책 뒤표지)
좋은 멘토를 찾아라. 친구나 선배도 좋지만, 보다 더 풍성한 경험을 나눈 대선배인 선생, 어른들과 만날 기회를 자주 만들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보라. 아프리카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고 있는 도서관과 같다'고 하지 않던가(74).
목표, 방법론, 실천.
세속적 의미의 성공이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꿈이든,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 요소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목표가 없으면 무의미하며, 방법론이 옳지 않으면 비효율적이고, 실천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75-76).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지는 것이다(81).
우리는 많은 경우,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누군가를 그렇게도 사랑하고 있는 로맨틱한 감정에 놓인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115).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정해놓고 꾸준히 자신을 점검해가며 실천하는 편이 좋다(156).
1> -------------- <열망> -----------------------------------------
이런 현실을 너무 나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A박사에게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기업의 제안을 물리치라는 얘기를 차마 할수가 없었다. 나는 겨우겨우 힘을 내어 간신히 답했다.
"그건 자네가 얼마나 교수가 되고 싶은가 하는 '열망'의 문제네. 자네 전공에 맞는 채용공고가 언제 날지 전혀 장담할 수도 없고, 그때까지는 이렇게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니 말일세. 그걸 모두 견딜 수 있을 만큼 교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다면, 그 열망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다면, 이번 제안은 거절하고 더 기다려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던 그는 며칠만 더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다. 그러고는 바로 다음 날 나를 찾아왔다.
"그 회사에는 가지 않겠다고 연락했습니다. 조금 더 준비해서 좋은 결과 있도록 해보겠습니다."(26)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매 순간 가장 합리적으로 최적화된 의사결정이 모인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열망의 힘 때문이다(28).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패션)'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패시오)'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이란 눈 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온다(29).
---------------------------------------------------------------------
2> -------------- <인생의 시기> -----------------------------------------
인생에 관한 한, 우리는 지독한 근시다. 바로 코앞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늦가을 아름다운 고운 빛을 선사하는 국화는 되려 하지 않고, 다른 꽃들은 움도 틔우지 못한 초봄에 향기를 뽐내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하지만 '일찍' 꽃을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매화가 세상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가? 가장 훌륭한가?
그렇지 않다. 매화 꽃잎이 다 지고 난 5월에 만개하는 장미는 어느 꽃보다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하지만 장미가 마음이 급해 3월에 피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춘삼월 찬이슬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 하는 계절이 따로 있다. 꽃들도 저렇게 만개의 시기를 잘 알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대, 좌절했는가? 친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대만 잉여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가? 잊지 말라.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다소 늦더라도, 그대의 계절이 오면 여느 꽃 못지않은 화려한 기개를 뽐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33-34).
너무 일찍 출세하면 나태해지고 오만해지기 쉽다. 나태하므로 더 이상의 발전이 없고, 오만하므로 적이 많아진다. 그러니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고, 종국에는 이른 출세가 불행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선인(先人)들은 수많은 사례를 경험한 끝에 이런 격언을 만들게 됐을 것이다.
선생으로써 내가 제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일찍'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성공하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크고 작은 굴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을 마감하면서 "내 가장 큰 성취는 이것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래도 내가 20대 후반에는 남보다 훨씬 잘나갔다."고 자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35).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는냐가 아니다. 마지막에 어떤 꿈을 이룰 수 있느냐다(37).
많은 사람들이 빨리 성공하고 싶어 한다. 젊은 나이에 빨리 출세하는 것이 예로부터 최고의 소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기 위해 자꾸만 시계를 본다(196).
하지만 시계보다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다. 삶의 성공이란 퍼즐의 마지막 피스를 채웠을 때 판가름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아가 나침반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거울이다. '지금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를 수시로 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울보다 나침반을, 나침반보다는 시계를 더 찾는다.
인생의 성공이란 커다란 한 번의 성취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작은 승부로 직조(織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획기적인 승부처, 전환점만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무능한 사람일수록 '이것만 되면, 이때만 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 한다. 가정하지 말고 실행하라. 하루하루 조금씩 남는 삶의 빈틈에서 꽃을 피워라. 그 시간의 빈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은 영혼을 만드는 유일한 재료라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결심 중의 하나라는 담배 끊기도 마찬가지다. '1월 1일부터는 꼭 끊겠다'는 식으로 결의하는 사람은 대개 실패한다. 그것은 1월 1일에 끊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12월 31일까지는 피워도 괜찮다는 자기 위안이기 때문이다. 대신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담배를 참자'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 그렇게 작은 하루하루의 실천을 쌓아가면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197).
그러므로 순간적인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고, 작은 실천을 먼저 행하라.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앞에 있을 때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하지 말라. '이걸 위해 오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지?'하고 고민하라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그렇다. 지금부터 그대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라.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보게 될 그대 인생의 커다란 그림을 생각하라. 오늘 하루 때문에 그 멋진 완성품의 한 구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지 않는가? (198)
---------------------------------------------------------------------
3> -------------- <화살파와 종이배파의 인생설계> ------------------------
내가 이들을 '화살파'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인생을 최단 경로로, 효율적으로만 설계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목표를 과녁처럼 세우고, 이를 겨냥해 어떻게 시위를 당길지 최적의 경로를 설정한 다음, 하나씩 실천하면 인생이 '화살처럼' 최단거리를 날아 목표에 명중할 것이라고 믿는다(42).
물론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와 수단, 혹은 중간 단계의 목표가 확실하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화살파 친구들을 보며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이 성장하면서 수없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자꾸 닫아버린다는 것이다(43).
종이배파는 반면 목표가 너무 불확실해서 탈이다.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 이렇게 질문이 시작되면 상담하는 사람으로서도 참 당황스럽다. 이때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네가 제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혹은 제일 좋아하는 일은 뭔가?"
그러나 황당한 대답이 되돌아오기는 마찬가지다.
"음......, 글세요,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저도 제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답답한 노릇이다. 하긴, 자신이 무엇을 소망하는지 알고 있다면 나를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44).
바람직한 자세하는 화살과 종이배 사이 어디쯤 있을 것이다. 인생은 젊은 시절에 세워둔 목표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지도, 종이배처럼 세월의 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려 얼토당토않은 지점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그러니 자신의 지향점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상황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대가 화살파든 종이배파든, 혹은 그 사이 어디쯤 어정쩡하게 서있더라도 변함없이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나와 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게 하지 말고, 자신의 맨얼굴을 정명으로 응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분위기, 친구들 사이의 트렌드 같은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고서.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가장 잘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47)
---------------------------------------------------------------------
4> -------------- <때로 우연에 기대는 인생설계> ------------------------
내 삶도 돌이켜보면, (황동규) 시인의 표현대로 '운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절 그렇게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목표를 상실한 나를 자책하거나, 그 목표에 조금도 다가서지 못하는 무력을 반성하기 전에, 내가 가진 가능성을 그저 믿었어도 좋았을걸. 내 동료와 선생님과 함께 버틸 수 있다면, 나는 충분히 자격 있다고 해도 좋았을걸. 그걸 이제야 알겠다.
이제 그대들에게 선배로서 말한다. 자신의 잠재력을 믿어다오. 명징한 목표가 서지 않거나, 혹시 그것이 다소 흔들리더라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아다오. 그래서 손쉽게 목표가 보이는 고시니, 자격증이니, 스펙이니 하는 것에 너무 쉽게 그대의 무한 가능성을 함몰시키지 말아다오.
잠시라도 삶의 치밀한 계획에 여백을 두고, 다소 우연에 기댈 수는 없겠는가? 나는 나이고, 그러므로 시간의 우연에 잠시 나를 맡긴다 하더라도 치밀하게 계획된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룰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그대는 그렇게 스스로를 믿어줄 수 없겠는가 말이다(52).
---------------------------------------------------------------------
5> -------------- < 부러워하지 않으면, 그게 지는 거다 > ------------------------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다니다 보면,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표현을 가끔본다. "네가 이룬 것은 인정하지만, 그건 내 삶의 방식과는 다른 성취이므로, 그닥 내가 부러울 것은 없어."라는 의미일 것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부러워하지 않겠다는 요즘 세대의 쿨한 감성을 대변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77).
(그러나) 문제는 이번에 이겼느냐 졌느냐가 아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조금 졌다고 상대의 승리를 인정하지 못하고 질투한다면, 그다음 경쟁에서도 결과는 뻔하다.
한때 '루저(loser)'라는 말이 자주 들렀다. 이제는 루저라는 표현이 시대의 금기어가 된 느낌이다. 물론 '너는 루저'라는 말에 발끈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열등감을 건드린 것에 불쾌해하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자기성취의 자극으로 삼는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열등감을 가지고 산다. 누구는 외모에, 누구는 성장 환경에, 누구는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이처럼 그 그원이 다양한 만큼이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반응 또한 다양하다. 대개의 사람은 그 열등감을 감추려고 노력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잊거나 부정하며, 소수의 의지 강한 사람들은 그것을 극복하려고 애쓴다.
그대는 어느 쪽인가?
같은 조건이라면, 가벼운 배일수록 더 빠를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뱃사람들은 배 밑바닥에 '밑짐'이라 부르는 일정 무게의 짐을 항상 실어둔다. 밑짐이 든든한 배는 풍랑이 거센 때라도 큰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열등감을 인생의 밑짐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떻겠는가? 감추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성취의 동력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면 어떨까? 그럴 때, 열등감은 인생의 풍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질투하는 대신 선망하라.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라. 설령 그의 성공에 문제가 많아 보일지라도 그대는 그에게서 존중할 만한 점을 찾아, 그것을 배워라.
한껏 부러워해라. 그래야 이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지는 것이다. (79-81)
--------------------------------------------------------------------
6> ------------- < 인생의 시련은 힘이다 > --------------------------------------
누군가 젊은 시절의 내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숙한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웃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성숙, 그런 거 안 해도 좋으니까 그런 어려움은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런 시련일랑 나중에 조금 더 어른이 되어, 그런 종류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때가 됐을 때, 그때 맞아도 충분하니까(92).
이글은 그날 내가 충분히 위로하고 격려해주지 못했던 B에게, 그리고 어쩌면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시련을 맞닥뜨리고 있는 그대에게, 그리고 지난날 힘겨워했던 나에게 쓰는 글이다.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겠지만, 명심하라. 그럼에도 시련은 그대를 강하게 만든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은 대학교수 공채에서 연이어 낙방하고 깊은 좌절에 빠졌던 나를 건져 올린 동아줄이었다. 그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로마를 로마로 만든 것은 시련이다. (중략) 전쟁에 이겼느냐 졌느냐 보다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는 결정된다"(로마인이야기 2권, 67 인용)
중요한 것은 시련 자체의 냉혹함이 아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그 시련이 가혹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은 결국 오롯이(온전히 모두) 나다.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이다. 그대는 지금 그대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인생의 크나큰 시련을 지금 맞고 있다고 생각하다면, 그 친구들만을 위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깊이를 모르겠는 그 시련이, 바로 그대의 힘이라고(93)
'신은 사랑하는 인간을 시련으로 단련시킨다'고 했다. 어느날 부터 나는 시련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왜냐하면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시련의 힘이기 때문이다.
B여, 시련에 빠진 그대여, 그리고 어느 날의 나여.
축복이다. 시련이 있기에 그대가 있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부모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해주고 할 고민이라고는 사치스런 투정뿐인, 어려움 모르고 자라는 그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소중한 '경험의 상속'을 하고 있는가? 이 순간 지쳐 있는 힘든 그대는 언어의 유희라고 고개를 저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명확한 진실이 여기에 있다.
시련은 그대의 힘이다(95).
---------------------------------------------------------------------
7> -------------- <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 ---------------------------
그대는 지금 어느 마른 우물 안에서 외줄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여기서 탈출하려면 줄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힘이 없다. 올라가기는 커녕 이대로 버틸 힘도 바닥난 상태다. 아래는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이 줄을 놓치면 저 깊은 바닥 아래로 떨어져 온몸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다. 무섭다. 힘은 점점 빠져 오는데 여기서 탈출할 방법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그대가 진짜 우물에 갇힐 일은 없겠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우물에 빠진 듯한 상황에 처한다. 출구도, 비상구도 보이지 않는 진퇴양난의 위기. 어떤 목표를 이루기는 너무 벅차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너무나 아쉽고 또 두려운 괴로움.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줄을 놓는다.
그렇다. 포기하고 줄을 놓는 것이다.
그러면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겠는냐고? 그렇지 않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 깊게 느껴졌을 뿐,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우물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는 항상 그렇다. 우리는 겨우 30Cm 정도 위에서 죽을 줄 알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항상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깊은 바닥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닥이 두려운 것이다.
정말로 포기하고 줄을 놓아보라. 생각보다 많이 다치지 않는다. 인생에서 온몸이 산산히 부서질 만큼 깊은 바닥이란 많지 않다. 그대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착지한다면.
줄을 놓은 후 발이 땅에 닿으면, '어, 생각보다 깊지 않잖아?'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잠시 쉬어라, 다시 밧줄을 잡고 밖으로 나갈 만큰 기운을 차릴 때까지. 혹시 가능하다면 어둠 속에서 연습도 좀 하라, 좀 더 쉽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도록. 충분히 밖으로 나갈 힘을 모았다고 생각되거든, 그때 다시 밧줄을 잡고 오르기 시작하라. 아마도 이번엔 중간에서 대롱대롱 매달리는 불상사 없이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96-98).
이 글을 읽는 그대가 고시생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포기가 항상 비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불굴의 의지가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인터넷 만화가 강풀 씨는 처음에 만화잡지의 문을 숱하게 두드렸다가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 당시는 만화잡지가 아니면 만화를 발표할 매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연이은 실패 끝에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처음 만화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가 얼마나 탁월한 성취를 보여줬는지는 그대가 더 잘 알 것이다. 그가 만화잡지의 줄만을 끝까지 붙잡았더라면 결코 이룰 수 없었을 성공이다.
추락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마라.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더구나 그대는 젊지 않은가? 어떤 추락의 상처도 추스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라.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고 했다.
자신있게 줄을 놓아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날개를 펼치고(102).
---------------------------------------------------------------------
8> -------------- < 사랑하지 말라 사랑하라 > ---------------------------
많은 커플들이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로에게 너무 커다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에게만 몰입해줄 것을 바란다. 집착이다. 날개를 꺾어 곁에 두려고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상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서로 사랑의 이름으로 자기 요구만 한다. 욕심이다.
이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사랑이란 서로를 완성시켜가는 관계다. 거울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을 통해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랑이 '관계를 위한 관계'에 빠져 자아의 퇴행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투사된 자기애(自己愛)의 변형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많은 경우,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은 '누군가를 그렇게도 사랑하고 있는 로맨틱한 감정에 놓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냉철하게 물어라. 그대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대인가, 혹은 그이 자신인가? 다시 물어라, 그대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인가 혹은 그대 자신인가?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최선의 자기, 최선의 상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라. 결구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사랑 따윈 필요 없다(115).
두 개의 모순되는 글을 썼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온몸을 던져 사랑하라고 했고, 자아를 잃게 만드는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애먼(엉뚱한)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고? 이 글에서만큼은 그 결론을 적지 않으련다. 사랑이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므로,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아니라 그대가 하는 것이므로, 그러므로 굳이 한마디를 더한다면 이것뿐이다.
사랑하라(116).
---------------------------------------------------------------------
9> -------------- < 삶의 방식은 결심이 아니라 연습이다 > -------------------
이런저런 결심을 했다가, 며칠 못 가서 흐지부지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운동을 하겠다든지, 하루에 몇 시간씩은 꼭 영어 공부를 하겠다든지, 담배나 술을 끊겠다든지..... 하지만 그 결심히 며칠이나 갔던가?
그대가 가장 최근에 했던 결의가 무엇인지 떠올려보라. 이번에 처음한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결심은 과거 언젠가 했던 것의 반복이다. 그것도 여러 번의 작심삼일을 거친....
이처럼 결의를 실천하는 것이 힘든 이유는, 그 결심이 대부분 우리의 '습관'을 바꾸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습관은 바꾸기 어렵다(151).
우리는 대개 무언가를 하기 위해 먼저 작심(作心), 즉 마음을 먹는다. 삶을 사는 방식이 '결의'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야 겠다'고 굳건하게 결의하면 실천은 따라온다는 식이다. 그리고 그 실천에 실패하면 자신의 의지가 나약하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결의가 아니다. 연습이다. 마치 수영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 수영 잘하는 법에 대한 책을 달달 외우고, "내일부터 수영을 잘할 텐다!" 하고 결의하면 박태환 선수처럼 될 수 있을까? 물론 천만의 말씀이다. 수영을 잘하려면 연습해야 한다. 매일매일 연습하면서 조금씩 자기 자신을 바꾸어나가야 한다. 중간에 일이 생겨서 하루이틀 거르더라도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해 가면서.
아직 3일 연습해서 수영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작심삼일했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 일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의 결심을 며칠 실천하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계속해나가는 태도다. 공부, 금연, 절주, 다이어트 등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습관들은 결의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가야 할 문제다(153).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결심하고 실천하려고 하면 안 된다. 작심하는 사항이 많을 수록 실패할 확률은 더 커진다. 특히 새해 첫날 같은 때 일출을 보며 올 한 해에 실천할 사항을 열 가지도 넘게 결심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하나도 성공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정해놓고 꾸준히 자신을 점검해가며 실천하는 것이 좋다. 중간에 다소 태만해지더라도 계속해서 자신을 다잡아가면서 말이다. 이때 한번 지키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한두 번의 작심삼일은 지극히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더딘 것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멈출 것을 염려하라(156).
---------------------------------------------------------------------
10> ----------------------- < 혼자 놀지 말라 > ---------------------------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 모든 관계의 기본은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간단하다. 남이 나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말과 행동을 하고, 남이 나에게 했을 때 즐겁지 않은 짓은 하지 않은 것이다.
역지사지란 간단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매우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 자신에게 관대하고 또 스스로 합리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역지사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매일매일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반성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일상 속에서 늘 '입장 바꾸기'를 연습해야 한다.
그대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이 미숙한 '귀한 자식'들이다.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고 설혹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그때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고 양해해줘야 한다. 좋은 친구란 그리고 변치 않을 인간관계란 어딘가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163).
그대, 혼자 놀지 말라. 혼자 밥 먹지 말라. 혼자 카페 가지 말라. 만약 제자들이 졸업장 말고 대학에서 또 가져가야 할 단 하나의 아이템을 말해달라면, 나는 단연 '좋은 인간관계'를 고르겠다. 왜 감정 없는 반쪽짜리 로봇이 되려고 하는가? 컴퓨터를 끄고, 이어폰을 빼고, 온몸을 던져 사람들 사이에 그대를 내던져라(164).
---------------------------------------------------------------------
11> ------------- < 자신을 만나라 > ---------------------------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과 대면하는 일은 자신의 역량을 어떤 방향으로 길러 나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중요하다. 많은 청춘들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그러고는 다들 쇼핑하듯이 유행하는 스펙을 쌓느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주워 담는다. 그래서 항상 바쁘게 열심히 생활하고, 스펙도 제법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경쟁자들과 별로 차별화되지 못한다.
철저한 자기와의 대면이 없으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목표의식도, 지금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대한 현실인식도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208-209).
학교와 사회는 다르다. 사회란 정답이 있는 문제에 올바른 답을 적어내면 거기에 맞는 학점이 나오는, 그런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나태 속에 분주함이 있다. 생활은 다소 늘어지지만 대신 자기 인생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해 바쁜 모색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분주함 속에 나태가 있다. 하루하루 일상이 너무 분주하면 그것을 처리하는 데 시간과 정열을 다 써버리고, 정작 자기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일에는 나태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빠서 게으르다. 그렇게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날 거울을 들어다보면 '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어색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외줄을 타는 곳이다. 일의 성취와 개인적 행복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하고,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의 고독한 의사결정의 외줄을 타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균형을 잃는다.
어떻게 하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기성찰이 중요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학생때보다 훨씬 바쁘기 때문에 '분주 속의 나태'가 일상화된다. 그렇게 자기를 잃은 순간, 균형은 무너지는 것이다.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라. 지난 꿈을 종종 회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항상 설계하라. 주어지는 기회가 기회인 줄 알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모일 때, 그대의 직장생활은 팽팽한 줄 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균형의 끝자락에 성공과 보람의 조화가 닿아있음을,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
12> -------------- <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 -------------------
나는 '1-1 원칙'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하루에 1시간씩 1년간 투자하면 무엇이든 꽤 잘할 수 있게 된다'는 원칙이다. 물론 프로급의 최고 수준에 이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 소박한 목표는 이루게 해준다(221).
우리 모두 작은 소망을 하나둘씩 갖고 산다. 테니스를 잘 쳤으면, 플루트를 잘 불었으면, 혹은 일본어를 할 수 있었으면.... 막연히 생각만 해왔던 소망도 1-1 원칙만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상상 속의 꿈이 아니다. 꾸준함의 힘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에 보면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온다. 비틀스나 빌 게이츠 같은 비범한 인재들, 즉 아웃라이어(outlier)의 성취는 모두 1만 시간의 연습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타고난 천재로 알고 있는 모차르트도 실은 1만 시간의 연습을 통해 재능을 발휘했다고 한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간 모아야 이룰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연습량이다. 거기에 비범한 재능도 겸비해야 한다. 이것에 비하면 하루 1시간씩 1년, 모두 더해도 365시간은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연습과 저축은 모두 미래의 달콤함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감수는 1만 시간처럼 무지막지한 양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222-223).
---------------------------------------------------------------------
13> -------------- < 수입보단 미래에 가치를 두라 > -------------------
젊은 날의 경제적 풍요는 때로 독(毒)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이 꿈꾸는 업(業)에서 얻어진 것이 아닐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청년기에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각성을 마취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절실함을 잃으면 미래가 흐려진다.
물론 적성에 맞는 알바를 하며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처럼 돈이 기준이 되어 본업을 업신여기는 것은 무척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건 당장의 수입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자신의 꿈이기 때문이다(208).
그러므로 그대의 가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동력으로 삼아라.
젊은 그대는 일의 가치를 당장의 수입으로 환산해 평가해서는 안된다. 대신 그대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일의 가치를 매겨라.
돈보다 소중한 것, 그것은 바로 그대의 미래다(281).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