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2010[2013]). 열림원



 이어령(2010[2013]). 지성에서 영성으로. 열림원
--> 이어령의 지성으로 영서을 지적으로 설명하리라 기대했는데 그는 감성적 언어와 시적 언어로 영성을 소개한다(20140806).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나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활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9). 

인간은 벽을 만들었습니다. 허허벌판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시에 벽 속에서는 감옥이나 동굴 같아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벽에 의지하고 벽에 반발하는 앰비벌런스(ambivalence, 양면가치 변존)에서 회화가 생겨나는가 봅니다. 그림은 벽에 뚫어놓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입니다(51). 

'메멘토(Memento)'는 라틴어로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리(Mori)'는 죽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메멘토 모리'라는 말은 '죽음을 생각하라', '죽는다는 걸 생각하며 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64). 

낙타의 눈물과 마두금의 음악. 리더가 누군가를 이끌어가려면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영혼을 일깨워서 눈물이 솟아나게 해야 합니다. 비가 와야 무지개가 돋는 것처럼 눈물이 흘러야 영혼에 무지개가 생깁니다(119). 

지도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군사력, 경제력 다음에는 남을 감동시키는 매력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만 보면 즐겁고, 그 사람이 말하면 어려운 일도 함께하고 싶은것. 이렇게 절로 우러나오는 힘은, 금전과 권력이 현실인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에서도 돈과 권력으로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 CEO분들께 이야기를 할 때 저는 늘 문화 마인드를 가지고 매력 있는 인간이 되어야 회사도 소비자도 좋아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원래 문화라는 말은 문치교화(文治敎化)의 준말입니다. 무력이나 금력이 아니라 글(文)의 힘으로 상대방을 교화시켜 다스리는 방법이 곧 문화라는 말의 원뜻이었습니다(121). 

컨실리언스(consilience, 통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도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던가. 모든 생명체를 관통하고 있는 장소에 대한 깊은 애정(137). 

삶이란 혼합되어 있는 만두 같은 것이어서 통째로 씹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163). 

인간에게는 누구나 예술가적 기질과 초월적 영성의 기질이 있습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되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적 현상을 체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영성입니다. / 신앙은 경험하는 것입니다(175). 

인간의 삶은 주고 받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고받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는 아무리 다가서도 얇은 빈틈이 생깁니다. 전위적인 화가 마르셀 뒤샹은 그것을 '앵프라맹스(inframince)'라고 불러씁니다. ... 프랑스말의 '앵프라(infra)'는 ... '기반(基盤)'이나 '하부(下部)'를 뜻하는 접두어입니다. 그리고 '맹스(mince)'는 얇은 것, 마른 것'을 뜻합니다. ... 앵프라맹스라고 하면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초박형(超薄形)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 됩니다(180).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앵프라맹스의 단층이 있습니다. 목숨을 건 남녀 사이에도 의리를 따지는 친구지간에도 그것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조금 전 자기와 지금의 자기 사이에도 있지요.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누구나 그리고 매순간 혼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183).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도 (애가) 3장 32-33절에 이르면,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246)

(신포도 여우 비유) 그걸 자기합리화라고 하죠. 프로이트는 이것을 '자기방어기제(self-defense mechanism)'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절망하면 너무 비참하니까, 욕망이 좌절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남이 볼 때는 자기합리화이고, 직 중심으로 말하자면 자기기만이지요(259). 

하워드 라인골드라는 미국 테크놀로지 분야의 대가는 자신의 책 서문에서 '내가 어려서 그림에 색칠을 할 때 선 바깥으로 나가도 야단치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께 감사한다'고 해씁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죠. 엄마들이 자녀가 일류 대학 좋은 과에 들어가라고 닦달하지 않고 밥을 굶든 말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요즘 같은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도덕만으론 부족하지 않을까요? 남들보다 경쟁력도 있어야 하겠고, 스펙도 중요하잖아요. / '스펙'이라는 말은 전자 제품의 '사양'을 뜻하는 'specification'에서 유래한 거예요. 기기의 특성은 어떻고 메모리는 얼마고 하는. 그걸 사람에게 쓰고 있으니, 인간이 전자 제품이 된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생명화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생명이 있는 것도 물질화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만 해도 하늘에서 비가 오면 '비가 오시네'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놈의 산성비'하면서 귀찮아하지 않습니까. 물질적인 빈곤도 재앙이자만 모든 걸 물질화하는 것이야말로 재망이에요. 칼 폴라니라는 학자는 '현대의 비극은 상품화 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했죠. 생명을 상품화하고, 땅을 상품화하고, 아이들 기를 쓰고 공부시키는 것도 결국은 상품화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소유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시각으로 보면 우리 모두 부자예요. 아침에 일어나 해돋이를 보고 새소리를 듣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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