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글리츠(2012), 이순희(2013). 불평등의 대가. 열린 책들



조지프 스티글리츠(2012), 이순희(2013). 불평등의 대가. 열린 책들


이 책에서 스티글리츠는 시장을 한마디로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계 장치>라고 답하고 있다. 상위 1퍼센트는 생산에 기여한 것이 많아 그 엄청난 부를 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특권과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적 생산으로부터 터무니없는 양을 빼앗아 가는 지대 추구로 일관하고 있다. 시장 경제를 구성하는 각종 제도는 경쟁과 효율성과 투명성 등 교과서에 나오는 시장 경제의 각종 요건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그 1퍼센트의 지대 추구가 더욱 큰 규모로 확대 재생산 되고 또 안정적으로 영구화되도록 보장하는 장치로 애초부터 디자인되어 있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산에 기여하는 바가 적어서 그토록 눈곱만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러한 무시무시한 기계 장치의 작동에 치이고 밟히면서 저소득과 불안정성과 파멸의 상태로 밀려나고 있을 뿐이다. <시장>이 이처럼 가공할 전쟁터로 변질되어 갈 때,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이를 시정하고 바로잡아야 할 각종 정치적, 사회적 영역의 제도 장치들 또한 이 1퍼센트의 특권과 안녕을 영구화하기 위한 장치로 변질된지 오래다.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야할 경제학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처럼 대중들을 세뇌하고 마취시키는 도구가 되었고, 불평등을 시정할 재분배의 마지막 장치인 조세 정책은 1퍼센트 부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렸다(11,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추천사) 

잘 알다시피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매우 심각해졌다. 불평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소득 격차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퍼센트의 월 소득이 101만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퍼센트의 월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이 하위 10퍼센트의 소득보다 약 아홉 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 하지만 이 같은 통계청 조사는 표본 조사를 통한 것으로, <타워팰리스> 거주자처럼 조사를 꺼리는 최상류층의 실태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다행히도 상위 1퍼센트의 소득 집중도 윤곽이 경제학자 출신의 민주당 홍종학 의원에 의해 드러난 바 있다. 홍의원이 그동안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공개되지 않던 국세청의 <통합 소득 100분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상위 1퍼센트의 평균 소득(3억 8,120만원)은 중위 소득(2,510만원)의 15.1배였다. 하지만 이는 소득이 적어 면세 대상이 되는 과세 미달자를 뺀 비교인데, 과세 미달자 560만 명을 포함할 경우 상위 1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중위 소득(1,688만원)의 22.6배나 된다(14, 선대인 경제연구소장, 해제). 

이 같은 빈부 격차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교육 기회의 격차와 건강 격차, 사회적 이동성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면관계상 여기에서는 교육기회의 격차만을 따져 보자. 한국은 공교육 비중이 낮아 세계에서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이에 따라 집안의 재력에 따라 학생들의 진학 기회가 크게 달라진다. 이른바 포커판에서처럼 판돈(=사교육비)을 많이 댈 수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사립 초등학교와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 등으로 이어지는 <성공 경로>에 일찍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소득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교육의 <승자 독식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미 환상이 된 지 오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의예과 신입생의 43퍼센트, 법대 신입생의 38퍼센트가 자신이 상류층 출신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상류층 응답 비율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이처럼 상류층 출신들이 한국의 지배 엘리트로 성장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법조계가 대표적인데, 특목고가 생겨난 이후 외고->서울대->법조계로 이어지는 엘리트코스는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실제로 언론 보고에 따르면 이미 대원외고를 나온 현직 판검사가 129명으로 전통의 명문고인 경기고 55명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끊어지고 기회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공식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국가들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의 67퍼센트 가량이 국공립대 등록금을 내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78퍼센트가 사립대 등록금을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소득은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고 대학 교육의 수준도 훨씬 낮은 나라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은 더 높은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개탄하는 미국의 등록금 현실도 한국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 수 있다(16-17, 선대인 경제연구소장, 해제). 

한국 경제가 외환 위기 이후 십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방식은 늘 이런 식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충분한 부가 생산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벌 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해 온 것이었다. 특히 재벌 대기업에 대해서는 인위적 고환율과 연간 16조원이 넘는 R&D 예산의 대부분, 대규모 공공 토건 사업, 불공정 거래 및 담합 등에 대한 방조, 세계적으로 낮은 법인세율과 대폭적인 비과세 감면 혜택 등 온갖 편의를 제공하면서 개벌의 독식을 방치해 왔다.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재벌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는 와중에도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18, 선대인 경제연구소장, 해제)

<불평등의 대가>는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 정치적 기득권을 강화하고 그 사회 정치적 기득권이 어떻게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그 같은 양상은 낯설지 않다(20 선대인 경제연구소장,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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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중 26쪽까지 읽고, 다음 기회로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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