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아브스만(2012). 이창희(역). (2014). 지식의 반감기. 책읽는수요일
.....발췌독하려다 어쩌다가 다 읽게 되었다.
지식은 인간이 주변 사물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고 이를 해석하는 수단이다(9).
여기서 나는 '지식'을 좀 더 느슨한 의미, 그러니까 각각의 대상에 대한 인식 상태라는 의미로 쓰겠다(11).
우리가 아는 지식은 대부분 이 범주(~에 관한 지식)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 이렇게 중간 정도의 시간 단위로 변하는 지식에 나는 '중속 변화 지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문이 mesofact인 저자의 조어를 책 후반부에서는 문맥에 따라 '가변적 지식'으로 번역했다-옮긴이)(13).
그러나 지식이 이렇게 변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냥 알기만 한다면 끊임없이 변하는 지식을 업데이트하느라 미친 듯이 지식의 쳇바퀴를 돌리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지식의 변화에는 패턴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 지식은 수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규칙적인 방식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지식 변화의 패턴을 알기만 하면 여기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14).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런 식의 과학적 지식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규칙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88).
이는 유명한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 즉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96).
나도 비슷한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적이 있다. <<보스턴글로브>>에 기고한 글에서 어떤 지식이 천천히 변하면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내용을 설명하느라 개구리를 솥에 넣고 천천히 물을 천천히 끓이면 개구리가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잘못된 지식을 인용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애틀랜틱>>의 제임스 팰로스James Fallows로부터 맹비난을 당했다. 팰로스는 이 개구리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던 참이었는데 사실 개구리는 뇌사 상태일 때만 솥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143).
궁극적으로 무엇이 사실이며, 이들이 어떻게 변하는 가는 측정의 문제이다. 우리 삶의 여러 가지 방식을 지배하는 체계적이고 수량화가 가능한 법칙들처럼 측정도 수학의 법칙을 따른다(230).
우리는 고정관념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주변 환경이 변해도 변화를 거부한다. 인간은 왜 이럴까? ... 이러한 현상을 '기준선 이동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가 탄생한 시점에서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아니면 우리가 어떤 상황을 처음 대했을 때 그 상황이 무엇이든 우리가 어떻게 거기에 익숙해지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275).
이는 제멜바이스적 상황과는 반대되는 상황, 즉 '확인 편향'과도 관련있는데 확인 편향은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이다(282).
확인 편향은 수많은 인지 편향 중 하나일 뿐이며, 인간 정신의 메커니즘 속에 들어앉은 또 하나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바로 '변화맹시'이다. 이는 인간의 시지각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인간은 어떤 물체 혹은 과제에 몰입해 있으면 다른 것, 심지어 중요한 것이나 하다못해 놀라운 것까지 모두 무시해버린다. 유니언 칼리지의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ristoper Chabris 교수와 일리노이 대학의 대니얼 사이먼스Daniel Simons 교수가 이 분야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따. 잘막하고 웃기는 비디오로 온라인에 올라가 있어, 아마 이 실험을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283).
변화 맹시는 지식과 사실의 세계에서도 문제가 된다. 가끔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과 마주쳐도 이를 걸려낸다. 여기서 맹시란 새로운 지식을 보지 못한다는 끗이 아니다. 이는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 낡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잡지를 읽으면서 어떤 사실을 알았다고 하자. 예를 들어 미국의 10대 도시가 어디인가에 대한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그 정보가 옛날에 배운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기 보다는 그냥 읽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편이 훨씬 쉽다(285).
물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면 자기 분야에 관련된 정보를 스스로 계속 업데이트해야 할 것이다(312).
역설적으로 기억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사람은 좀 더 업데이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최신 지식은 머리보다는 온라인상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314).
인간의 뇌 크기가 허용하는 데까지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규칙적으로 접촉을 갖고 이들을 기억하는가는 사실상 뇌의 크기에 달린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영장류 뇌의 크기를 조사한 로빈 던바Robin Dunbar라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던바 수자는 한 사람이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타인이 최대 몇 명인가를 보여준다. 150에서 200 사이를 말하는 던바 수자는 고대 로마 시대로부터 오늘날의 군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단위 전투 집단에 속해 있는 병사의 수와 대략 일치하며, 작은 마을의 주민 수와도 들어 맞는다. 놀랍게도 소셜 네트워킹 분야의 눈부신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2012년 현재 페이스북 친구의 평균값은 약 190으로 던바 숫자 범위안에 포함된다(324).
미래학자들은 싱귤래리티singularities라는 개념에 우려를 표하고 있따. 싱귤래리티란 기술의 발전 덕분에 변화가 급속하고도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세상의 모습이 영원히 바뀌어버리는 시점을 말한다(326).
지식은 놀랍도록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해갈 수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이해했기를 바란다. 개개의 지식이 변하는 모습은 무작위적일지라도, 변화 전체를 놓고 보면 체계적이고 예측이 가능하다. 자연계에 관해서든 인공의 세계에 관해서든, 측정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기술의 변화든, 오류의 발견에 의한 수정이든, 지식은 우리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규칙적인 방법으로 변해간다. / 지식의 변화에 직면하여 놀라지 않는 방법이라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시장의 변화에 따라 불빛이 변하는 공을 책상에 올려놓는 것 등이 있겠지만 그저 지식의 변화가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328).
이제 지식은 항상 변하는 것이 되었고,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 있는 규칙성에 대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브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변화하는 지식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를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살마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 지식은 아무렇게나 변하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변화 속에서도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자식이 규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지식은 반감기가 있으며, 수학의 법칙을 따른다. 일단 이 점을 인식하고나면 눈부시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아갈 준비가 된 것이리라(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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