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편)(2014).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비통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단순에 읽었다. 잊지 말자.
이런 기억들은 역시 글로 남여야 한다. 나 역시...
아래....(황종연│ 국가재난 시대의 민주적 상상력)
하지만 이 구원의 비전은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배경음악으로 제작된 그 KBS 캠페인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의 세속적인 집합적 자아에 대한 프로그램 제작자의 확신에 가려져 있다. 애도와 구조의 대열을 이룬 많은 남녀의 모습을 비추며 조난자와 그 족을 마치 한가족처럼 돕고 있는 한국인 집단 이미지를 제시한 그 프로그램은 최정적으로 동정과 협력이 한국인의 국민적 동일성임을 믿도록, 나아가 그 동일성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고 자긍하도록 시청자를 유인한다. 한마음 한국인 이미지의 시퀀스 이후 화면에는 장중한 선언의 템포로 분절된 한 줄의 문장이 뜬다. "아픔을 함께하는 당신, 당신이 대한민국입니다." 이 국민의식 고취를 위한 호명은 모든 노골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작이 그렇듯이 혐오스럽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인이라는 존재가 추악한 인류학적 사실이 돼버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124).
정부 고외관료들의 행태는 그들이 신임하기 어려운 집단이라는 의심으 확고히 해주었다(127).
아래... (전규찬 │ 영원한 재난상태: 세월호 이후의 시간은 없다)
마셜 매클루언 식으로 말하자면, 세월호는 또하나의 결정적인 텔레비전, 즉 원격시각적 사건이다. 배 밑으로 처박힌 주검들의 소름끼치는 방송이었다. 해저에 갇힌 억울한 생명들의 놀라운 생중계였다. 자본의 축적본능, 국가의 지능정지를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옮긴 TV. 지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바닷속 집단 멸절의 믿기지 않는 사태를 지켜봐야 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체제의 무력, 타자의 위험을 방관하는 세력의 비행, 죽음으로부터 약자를 구제하기에 애당초 너무나 무력한 국가의 공백을 목격했다. 카메라가 더이상 감출 수 없는 현장이 악몽처럼 드러났다(152).
세월호는 생환자인 우리에게 이런 뼈아픈 교훈을 남긴다. 신자유주의 자본국가는 개별적 죽음, 사회적 살인의 방임상태에 다름아니다. 다수를 저당잡아 소수를 보호하는 이기적 체제이자, 소수를 위해 다수를 버리는 기회주의적 지배구조다. 이런 비인간적 구조에 대한 복종이 굴욕을 넘어 자멸로 이어진다는 진실을 세월호는 환기시켜준다. 명령하는 소수는 안전하게 도피하고, 도피할 기회가 차단된 다수는 집단으로 익하고 만다. 전자는 후자를 구조할 생각을 못하고 겨를이 없으며, 출동한 공권력과 TV 카메라 들은 그 결정적 공백상태를 그럴듯하게 위장할 따름이다(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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