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2014).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문학동네



도정일(2014).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문학동네

20여년 동안 이곳 저곳에 기고한 글을 모은 산문 모음집 2번째 책
역시 전체를 읽진 않고, 관심있는 제목 중심으로 발췌해서 읽었다. 


(이야기는 위대하다)
다시 문학의 관점에서 말하면, 이 종적 특성을 규정하는 것은 만사를 연결하고 이어 붙이는 언어적 기능, 더 정확히는 언어의 은유적 기능이다. 세상 만물을 유사성, 차이, 대조, 비교의 방식으로 이어붙이고 연결하는 은유야 말로 인간의 특징적 인지 기능이다. 
이 인지적 특성을 최대한 자극하고 계발하고 세련화하는 것도 이야기다. 외톨이로 자라는 아이들도 저 혼자서 이야기를 만든다. 그러나 부모가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책 읽어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이들의 성장에 극히 중요하다. 괴테를 키운 것은 매일 밤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야기꾼 어머니'이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통해 '위대함의 감각'을 키운다고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말한다. 위대성, 정의감, 윤리의식 등 우리가 '인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덕 교과서로는 얻어지지 않는다(49)고 이 철학자는 말한다. 그런 교과서보다는 신화, 영웅담, 모험 이야기, 성장소설 같은 이야기를 읽게 하라고 그는 충고한다. 
우리에게도 풍성한 이야기 전통이 있다. 문제는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줄 화자로서의 부모 교사, 이야기꾼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 그리고 이야기의 교육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나날이 희박해져간다는 사실이다. '이야기꾼 할머니'의 존재가 지금처럼 그리울 때가 없다(49-50). 

(크리스마스와 사회통합?-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사이비 봉합 공식)
불행히도, 지금은 통합의 시대가 아니라 통합이 불가능한 시대다(211). 

(외눈박이 괴물교육-1994년 교육의 한 풍경)
그러나 맹목성 권력만이 외눈박이 괴물인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그 자체가 외눈박이 괴물이 되어 있고 교육에 대한 국민의식 역시 그 자체가 외눈박이 괴물을 몇치 못한다. 성적 조작만이 아니라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교육받은 어린들'의 교육관이고 교육열이다. 그 부모들, 그 어른들이 버티고 있는 한 우리 교육이 오로지 명문 대학, 오로지 영달, 오로지 출세를 지향하는 외눈의 괴물 신세를 면할 길은 없다. 이 어른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대학으로'가 결코 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을 단 한순간도 해보는 일이 없는 사람들 같다. 그들의 외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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