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 페이스북 친구인, 최승준 작가님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허락 후 원문을 게재한 글입니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옮겨 적는 이유는 시모어페어트교수님의 인사이트를 두고 두고 곱씹어서 생각하기 위함 입니다.
원문은 https://www.facebook.com/seungjoon.choi/videos/10213953111917448/ 에 있습니다.
계속 수정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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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스트로서의 시모어 페퍼트, 계산적 사고와 민주주의, 그리고 그 이상이 현실에 드리우는 그림자
1. 2017년 1월 26일에 MIT 미디어랩에서 진행되었던 시모어 페퍼트에 관한 생각을 생각하기 ( Thinking about Thinking about Seymour , https://www.media.mit.edu/events/papert )는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미첼 레즈닉, 앨런 케이, 쉐리 터클을 포함한 다양한 연사들의 5시간 10분 분량의 강연과 패널 토론 영상을 남겼다. 그 중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내용 중에 하나가 4시간 49분 즈음 부터 밥 매시( https://en.wikipedia.org/wiki/Bob_Massie_(politician) )가 진행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자막을 달아서 5분 길이의 영상을 올려본다.
시모어 페퍼트를 이해할 때 액티비스트는 생각지 못했던 중요한 키워드였다. 그는 젊은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흑인 어린이들을 교육하거나 목소리를 내면서 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 - https://en.wikipedia.org/wiki/Apartheid ) 운동에 참여했다. 그 때문에 억압을 받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떠나게 됐는데, 이런 이야기는 '생각을 생각하는 법을 생각하게 한 거인'( http://www.hankookilbo.com/v/f81d49a25f2545589e80d7a960d223… - 최윤필 기자)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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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아공 학창시절 페퍼트는 열성적인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가였고, 투옥 전의 넬슨 만델라를 만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인종 편견을 극복하게 된 데는 유년시절 아버지를 따라 흑인들밖에 없는 남아공 오지를 다니며 경험한 유대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Socialist Review’같은 좌파 잡지에 글을 썼다.( 가디언, 16.8.3) 코스타리카 내전 종식의 공로로 1987년 노벨 평화상을 탄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Oscar Arias Sanchez)가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 자문역으로서 코스타리카 교육시스템 근대화를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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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아공 학창시절 페퍼트는 열성적인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운동가였고, 투옥 전의 넬슨 만델라를 만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인종 편견을 극복하게 된 데는 유년시절 아버지를 따라 흑인들밖에 없는 남아공 오지를 다니며 경험한 유대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Socialist Review’같은 좌파 잡지에 글을 썼다.( 가디언, 16.8.3) 코스타리카 내전 종식의 공로로 1987년 노벨 평화상을 탄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Oscar Arias Sanchez)가 대통령이 된 뒤 대통령 자문역으로서 코스타리카 교육시스템 근대화를 돕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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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집한 영상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클로틸데 폰세카가 바로 코스타리카의 과학 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 이 패널 토론을 진행한 밥 매시는 수잔 매시의 아들인데 수잔 매시는 시모어 페퍼트와 가장 결혼생활을 오래한 사람으로써 이 영상의 앞 부분에 수잔 매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 내용도 무척 인상적이다. 사고 후에 시모어 페퍼트가 어떻게 스스로의 언어능력 등을 다시 재학습하고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지적 능력(스카이프로 지인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회복을 일부라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매우 놀랍다. 수잔 매시 또한 로널드 레이건, 냉전 시대의 끝부분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uzanne_Massie
시모어 페퍼트와 그의 후계자들이 하는 이야기에서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덜 소개되고 강조되고 있는 것이(시모어 페퍼트에 관한 재조명도 최근에서야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의 액티비스트 성향에 기인한 생각들이다. 왜 계산적 사고, 컴퓨팅 사고가 필요한가? 바로 어린이가 스스로 비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자립하는 시민으로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분야에서 혁신(또는 혁명)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래서 그의 책인 마인드스톰의 부제가 어린이, 컴퓨터 그리고 힘있는 아이디어 (Mindstorms: children, computers, and powerful ideas)였고, 생전에 그는 자신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세번째인 힘있는 아이디어였는데 세상 사람들은 어린이와 컴퓨터 부분만 많이 이야기 한다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2.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그 이상이 추구하는 바 때문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그 이상이 현실에 드리우는 그림자 때문에 생각은 복잡해진다. 'X의 목적은 통찰이지 Y가 아니다' https://brunch.co.kr/@kakao-it/159 의 마무리에 살짝 적긴 했던 내용을 조금 더 풀어보고 싶다.
2013년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 애런 슈워츠를 기리는 '인터넷 소년'이란 다큐멘터리가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The_Internet%27s_Own_Boy
https://archive.org/…/TheInternetsOwnBoyTheStoryOfAaronSwar…
유튜브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애런 슈와츠야 말로 앞서 이야기 했던 컴퓨테이션을 활용해 비판적 사고를 하고 실제로 행동했던 젊은이 중에 하나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여러가지 상념에 빠지게 된다.
https://archive.org/…/TheInternetsOwnBoyTheStoryOfAaronSwar…
유튜브에서도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애런 슈와츠야 말로 앞서 이야기 했던 컴퓨테이션을 활용해 비판적 사고를 하고 실제로 행동했던 젊은이 중에 하나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여러가지 상념에 빠지게 된다.
지난 달 이희욱 기자가 윤종수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의 발표를 블로터에 정리한 기사를 보면,
관계의 힘: “연결만으로도 사람은 바뀐다”
https://www.bloter.net/archives/295161
관계의 힘: “연결만으로도 사람은 바뀐다”
https://www.bloter.net/archives/29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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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년’(The Internet’s Own Boy)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셨는가. ‘인터넷 소년’으로 불리는 애런 슈워츠 얘기다. 애런 슈워츠는 14살때 RSS를 만들었다. 웹사이트 내용을 자동으로 보내주는 피드다. 15살에는 CCL의 메타데이터 시스템을 만들었다. 로렌스 레식과 함께. 천재다. 유명 해커이기도 했다.
‘인터넷 소년’(The Internet’s Own Boy)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셨는가. ‘인터넷 소년’으로 불리는 애런 슈워츠 얘기다. 애런 슈워츠는 14살때 RSS를 만들었다. 웹사이트 내용을 자동으로 보내주는 피드다. 15살에는 CCL의 메타데이터 시스템을 만들었다. 로렌스 레식과 함께. 천재다. 유명 해커이기도 했다.
이 친구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 많았다. 인터넷에서의 정보공개, 개방에 관심 많았다. 그쪽에서 계속 활동했다. 그후 스탠포드대 가서 레딧이란 뉴스 사이트도 만들었다. 학교는 1년 만에 중퇴하고 계속 활동했다.
이 친구는 학술논문 사이트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학술논문이 집중화돼 폐쇄적으로 관리되는 걸 못마땅해했다. 애런 슈워츠는 MIT 계정으로 학술논문 사이트를 해킹해 400만건 논문을 다운받아 공개했다. 이 일로 그는 기소됐다. FBI는 해킹에 상당한 경계심을 갖고 있었고, 컴퓨터 사기 혐의로 애런 슈워츠를 기소됐다. 최대 35년형을 받을 중범죄였다. 그 기소 기간 동안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애런은 26살 나이에 자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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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후반부에는 MIT의 중립적인 태도를 비판한다. 문을 따는 수업(lock picking)이 있을 정도로 저항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MIT는 정작, 학교 지하실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자신의 프로그래밍 능력을 활용해서 MIT 계정으로 JSTOR의 논문을 다운받아,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 관해 다뤄보려고 했던 애런 슈워츠의 행동을 그 접근방식을 꾸짖으며 충분히 훈방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카메라를 설치해서 증거를 잡고 그 자료를 FBI에 넘겼고, 훗날 FBI가 애런 슈워츠를 다른 핵티비스트들에게 경고하는 본보기 삼으려고 강하게 압박했을 때 우리는 중립이라며 발을 빼서 비판을 받았다.
* 핵티비즘: https://en.wikipedia.org/wiki/Hacktivism
* 인터넷 액티비즘: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et_activism
* 인터넷 액티비즘: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et_activism
* 애런 슈워츠의 이전 작업을 미루어 추측해 볼 때, 이번에도 세금이 쓰인 연구의 출판을 시민이 유료로 받아야 하는 시스템의 기저를 데이터를 통해 파헤치면서 논문 출판과 관련이 있는 정치 경제적인 유착 관계를 탐구해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는 관점이 다큐멘터리에 나온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시모어 페퍼트, 마빈 민스키가 MIT 미디어랩을 함께 일궈낸 사람들임을 떠올리고, 이 일이 오바마 정권 시절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면 뭔가 잘 맞물려 돌아갈 것이라 예상했던 기어들의 톱니가 충돌하고 갈리고 부서지는 것 같은 느낌이든다.
문득 궁금해진다. 컴퓨터를 활용해서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한 어린이, 그리고 그 어린이가 성장한 자유롭게 사고하며 자립하는 시민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행동했을 때, 사회와 권력은 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애런 슈워츠는 기소 중에도 SOPA(온라인 저작권 침해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고, 또 성과를 내기도 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Protests_against_SOPA_and_PIPA
3. 다큐멘터리 '인터넷 소년'의 가장 후반부에는 십대 때 췌장암 진단 키트를 발명한 것으로 잘 알려진 잭 안드라카( https://en.wikipedia.org/wiki/Jack_Andraka , https://www.ted.com/…/jack_andraka_a_promising_test_for_pan…
)의 이야기가 나온다.
)의 이야기가 나온다.
잭 안드라카는 애런 슈워츠의 사건 이후로 JSTOR가 논문의 일부는 비용없이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는 계정을 새로 만든 덕에 연구를 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하며 오픈 억세스(Open Access)를 지지한다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음이 다시 조금 훈훈해지는 느낌이지만, 위키백과의 잭 안드라카에 관한 비판 항목을 보면 또 생각이 복잡해진다.
https://en.wikipedia.org/wiki/Jack_Andraka#Criticism
https://en.wikipedia.org/wiki/Jack_Andraka#Criticism
'오픈 억세스의 지지자를 자처하면서, 자신의 발견은 누구나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출판하지 않고, 특허를 취득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의 노력으로 얻는 결실을 특허로 보호받고 싶은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픈 억세스를 지지하면서 앞뒤가 안맞는 행동을 한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십대에 불과하지 않은가. (잭 안드라카가 스스로 공개적으로 게이라고 이야기 하고, 얼마전의 메이커 씬에서 일어난 실비아 이야기 그리고 나오미 우와 데일 도허티 에피소드 등에 관해서도 연결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
4. 아마 여기서 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전개시키면 시킬수록 마음이 답답해질 것 같은 예상을 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하나의 관점으로 그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살펴보는 그림자(직접 복잡한 것을 떠올리고 다루는 것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는 그 원래 현상을 오독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곧 시작될 2018년에는 중학생이, 바로 이은 2019년에는 초등학생이, 그리고 이미 유아교육에서도 이슈(초등에서 다뤄지기 때문에 선행을 하는 시장이 만들어지는 전형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패턴)가 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교육에 관한 바람과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무엇으로 천명해야 할까.
여기에 환원적으로 문제를 쪼개고 푸는 알고리즘을 교육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분명 아니라는 것 하나만 확실하고 나머지는 참 갈팡질팡 혼란스럽다. 혼란스럽다고 보편적인 소프트웨어 교육을 빙자하며 다양성을 함의하지 못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교육, 특히 과목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장르들의 접착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칫 그동안의 수학교육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는 소프트웨어 교육의 현재 흐름을 좌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익숙한 (교육의) 방식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혁신하며 돌파하는 것이 시모어 페퍼트가 이야기 했던 Hard Fun(어렵기 때문에 더 도전이 되고 즐거운)을 추구하는 작업(프로젝트, 레지오 에밀리아식으로 말한다면 프로젝타찌오네 - 어린이가 열정을 다해 참여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기는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현실 문제 - 개인의 일상과 동떨어져 있는 박제된 문제가 아니라 - 를 다루는 도전을 이어가고 또 그 도전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도우는)이 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 2015년 12월에 적었던 '보편적인 프로그래밍 교육에 관한 오해'( https://goo.gl/PnnxMu )를 다시 읽어보고 지금까지의 생각을 종합해 봐야겠다.
* 웰 고님의 '이집트 혁명의 내부로'(2011)와
https://www.ted.com/…/wael_ghonim_inside_the_egyptian_revol… '참된 변화를 몰고 갈 소셜미디어를 설계합시다.'(2015) https://www.ted.com/…/wael_ghonim_let_s_design_social_media… 그리고 쉐리 터클의 '연결되었지만 외롭다'(2012) https://www.ted.com/talks/sherry_turkle_alone_together… 등의 내용도 교차해서 연상이 된다.
https://www.ted.com/…/wael_ghonim_inside_the_egyptian_revol… '참된 변화를 몰고 갈 소셜미디어를 설계합시다.'(2015) https://www.ted.com/…/wael_ghonim_let_s_design_social_media… 그리고 쉐리 터클의 '연결되었지만 외롭다'(2012) https://www.ted.com/talks/sherry_turkle_alone_together… 등의 내용도 교차해서 연상이 된다.
* 데이빗 카발로가 이끌었던 그룹은 '미래의 학습'이 아니라 '학습의 미래' 또는 '배움의 미래'로 번역해야 할 Future of Learning ( http://learning.media.mit.edu/people.html ) 그룹인데 자막을 쓸 때 실수했다.
* 여러번 다시 듣다보니 제니퍼 데이비스도 밥 매시의 사촌이 아니라 시모어 페퍼트의 사촌이었는데 자막에 실수했다.
* 데이빗 카발로가 언급했던 음모이론을 믿는 사람들에 관해 시모어 페퍼트가 쓴 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로고 메모 중에 있을까? http://web.sonoma.edu/users/l/luvisi/logo/logo.memos.html 아니면 내가 아직 모르는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일까? 몇 개의 키워드로 검색해봐도 아직 찾지 못했다.
* 이 영상에 자막을 달고 페이스북에 공유할 때 MIT 미디어랩의 허락을 받진 않았다. https://www.media.mit.edu/videos/seymour-2017-01-26/ 의 하단을 보면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경우 CC 4.0 라이선스로 저작자 표시만 하면 공유해도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경금지 조항이나 동일조건 변경허락 조항이 없기 때문에 자막을 영상에 붙박이로 달면서 영상을 변경한 것도 괜찮을 수 있으나 문제는 영상의 바로 밑에 아마 촬영한 사진작가로 보이는 Mim Adkins의 카피라이트( Copyright 2017 by Mim Adkins ) 문구가 있기 때문에 애매하다. 배경이 되는 사진에 카피라이트를 건 것일까? 영상에 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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