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원(2021).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

 박제원(2021). 미래교육의 불편한 진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교육당국이 미래교육을 한답시고 학습과학 원리를 왜곡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학습은 '기억'인데도 고성능 계산기에 불과한 인공지능을 내세워 '기억 교육'을 '주입식 교육'으로 몰아갔다. 교사에게 비판적 사고를 사실적, 개념적 지식과 대립하는 것처럼 이분법적으로 설명했고, 비논리주의적 사고인 창의적 사고만을 비판적 사고로 받아들이도록 편향적으로 왜곡했다. (23)



미래교육은 '새로운 학력'이라는 별칭으로 수년동안 초중고 교육을 지배했고 교사는 교육당국 지침에 따라 사실적, 개념적 지식보다는 절차적 지식, 또 절차적 지식보다는 태도 역량을 중시하며 교육해왔다. 하지만 소위 4C라고 불리는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창의력(Creativity)',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역량이 실제로 학습되어 향상되었다는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학생 간 지식 격차, 학력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학업 중단율도 사교육비와 함께 늘었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계층이동 사다리는 형체마저 사라져 잔해만 남았다. (27)



학생 중심 교육에서 "학생이 교육의 주체이고 교사는 학생이 관심사를 프로젝트로 삼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치다." 라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학생이 반드시 알아야 할 보편적 지식이나 규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학생들은 공동체 삶을 위한 기본 지식을 배워야 하고 각자의 경험을 구성한 특수한 지식과 조화를 이룰 때 온전한 주체로 성장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개별적이고 특수한 지식과 자유로운 학습만으로는 삶에서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즉 인간은 공동체를 선택하기 이전에 이미 특정한 공동체에서 태어났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의 영향 아래 바람직한 역할을 요구받으며 살아가는 연고적 자아이다. 

구성주의가 말하는 개인의 고유한 상황을 반영한 '맥락적' 지식을 확대해석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교육당국 일각과 이에 동조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떤 지식도 직접적으로 말해줘서는 안되고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구성주의를 이렇게 해석 하는 태도는 앎에 대한 이론과 교육 이론을 혼동하는 것에 불과하다. 교사가 공동체 삶의 기본 지식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이를 학습하는 일은 이미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려는 자율적이고 의욕적인 노력에 속한다.

요컨데 교육당국은 교육과정에서 역량을 중시하더라도 공동체 경험이 녹아 있는 사실적, 개념적 지식을 충분하게 가르치고 배우도록 권장해야 한다. (57~58)



특히 초등학교 교육에서 사실적 지식에 대한 기억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사실적, 개념적 지식을 충분하게 기억할 정도로 뇌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교사는 주의력과 지식에 대한 기억력을 결합함으로써 '이해', '비판적 사고', '문화적 기억'이 발생한다는 학습과학 원리를 꼭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점점 발달하면서 효과적으로 배움이 일어나게 가르칠 수 있다. (75~76)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

초등학교 수준에서 학습해야 할 지식의 부족을 들 수 있다. 비판적 사고라는 기술을 잘 적용하려면 지식의 양이 넉넉해야 하는데 매우 부족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학생들이 책을 읽은 후 토론하거나 감상문, 논술문을 쓰는 등 깊이 있는 학습을 소홀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최근 10년 동안 국어 수업은 역량 학습을 강화하는 지침에 따라 '토론'과 '글쓰기'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지식을 전이하는 활동 수업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책에 나온 지식이 실제로 장기기억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84)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청소년일수록 텍스트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디지털 읽기는 학습과 기억에 부정적이며 글을 읽는 끈기를 길러줄 수 없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독서를 소홀하고 점점 웹을 즐겨 찾게 되면서 읽기 능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85) 



지난 10년동안 우리 나라 초중고 교육에서 두드러진 코드는 '미래교육', '새로운 학력'이다. 교육당국이 수시로 미래의 새로운 학력으로 '역량'을 내세우고 이를 학습하지 않으면 성인이 돼 직업조차 구하기 어렵다고 말해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교사는 수업 혁신이라는 숙제를 떠안았고 전문적인 교사학습공동체를 만들어 새로운 교수학습법을 탐구하고 관련 정보를 SNS에 공유하는 등 미래교육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95)



교육당국이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학력인 역량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지침은 한마디로 미신이다. 역량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학교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능력이었고, 교사는 수행학습, 인성교육, 체험활동,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쭉 가르쳐왔다. 즉 역량은 21세기에 새롭게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능력이 아닌데도 교육당국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지고지순한 능력처럼 포장하여 삶과 교육의 역사를 왜곡해온 것이다. (116) 



창의적 사고 기술을 먼저 가르치는 방식도 비효율적이다. 창의력은 단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잡다하게 뽑아내는 발산적 사고 기술이 아니다. 뉴턴만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았거나 와트만 주전자에서 증기가 솟구쳐 나오는 현상을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런 현상의 표면적, 함축적 의미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 기술이 있었끼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불가능했던 창의적 통찰을 할 수 있었다. 비판적 사고 학자 케리 월터스(Kerry Walters)도 비논리적 입장을 따르지만 논증 등 엄격한 논리적 분석 기법은 학습 능력에 필수라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모든 학생이 분석, 추론, 평가 등 기초적인 논리 기술을 학습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127~128)



검색하여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검색한다고 바로 자신의 지식이 되거나 실제로 전이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134) 



교육당국이 "인공지능으로 지식에 대한 기억 교육을 대체할 수 있다."고만 주장하면 사실적 개념적 지식이 부족한 학생일 수록 검색하는 횟수만 많아지고 이를 전이하는 일은 더 간단치 않게 된다. 모르는 단어를 검색할 수는 있지만 정착 단어를 설명하는 어휘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계속 검색할 수밖에 없어 작업기억은 끝내 과부하에 걸리게 되고 제대로 된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 (136)



어떤 학습이든 처음에는 지식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그 후에 적용, 평가, 창의력 발휘 등으로 점차 학습 수준이 높아진다. (137)



창의력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기존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세상을 재구성하는 방식이자 과거를 재현하는 힘이다. 즉 과거의 지식을 탐구하고 현재의 과제에 적용함으로써 학습되는 사고 기술이자 태도이다. 따라서 창의적 활동의 초점은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 둬야 하고 이러한 취지를 살리려면 당면한 과제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186~187)



특히 초등학생을 교육할 때는 사고를 더욱 유연하게 하도록 지식, 기능,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모든 동물은 뇌가 발달하는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사람은 태어나서 10~12년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 뇌의 시냅스는 매우 유연한 상태인데 활발한 시냅스는 남고 두꺼워지며 쓰지 않는 시냅스는 빠르게 사라진다. 시냅스의 이런 특성을 고려해서 교육당국이 내세우는 구호처럼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기대하려면 이 시기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지식 위주로 가르치고 배우도록 해야 한다. 어휘의 의미나 수학적 개념 등 사실적, 개념적 지식을 기억하도록 하는 교육을 우선하고 주관이 개입되는 역사나 도덕, 이들 지식을 전이하는 학습은 점차 성장하면서 가르치고 배워도 늦지 않다. 그러지 않고 전두엽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가치'를 중심으로 가르치면 어른이 되더라도 특정한 관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는 가치 교육을 부정하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선입견, 편견, 독단 등 틀에 박힌 사고를 하지 않고 삶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뇌 구조를 교육으로 확립해보자는 것이다. (224~225)



아쉽게도 이런 일들은 지난 수년 동안 시도조차 없었다. 특히 몇몇 교육청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때 초중등교육법 제23조 2항에 따라 그 지역의 특수성과 학교의 실정, 학생의 실태, 교사와 주민의 요구와 필요, 해당 지역과 학교의 교육 여건 등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해야 하는데 도 지역 주민의 의사를 구체적으로 묻거나 지역 교육의 실태를 객관적으로 조사하는 절차를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단지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학력관만 바꿨을 뿐이다. (24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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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목적에 지식의 중요성을 환기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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